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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4-07-10
조회수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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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대외협력과 2014-07-10 1396



10일 아침 7시 부경대학교 미래관 4층 컨벤션홀에서 열린 부산 경남 울산 CEO 100인을 위한 ‘부경 CEO 행복인문학 콘서트’ 5강의 소재는 베토벤이었다.

1770년 12월 17일 독일 본 출생- ‘강요된 천재의 길’, ‘소년 가장의 운명’, ‘귀가 들리지 않는 음악가’ 베토벤에게서 오늘 우리가 배울 것은?


△ 홍승찬 교수. ⓒ이성재 사진(홍보팀)
강사는 홍승찬 교수(한국종합예술학교 예술경영학과)였다. 홍 교수는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등의 책을 냈다.

이날 강의 제목은 ‘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 베토벤이 ‘속물’이라고? 홍 교수의 설명은 이랬다. 위대한 예술가의 삶은 대부분 극단적이었다. 종래에는 자살하거나 정신병원 신세를 지기가 일쑤였던 것이다.

베토벤은 이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으니 속물이라고 표현한 것. 그러나 이는 은유다. 20대에 귀가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30대에 아예 들리지 않았던 베토벤의 치열한 삶을 잠시 들여다보자. 이날 홍 교수의 강의 키워드는 ‘운명’, ‘자유’ ‘불멸’ 등 3가지였다.

‘운명’- 교향곡 제5번(Symphony No.5 in C Minor, op.67)

귀가 어두운 베토벤은 어떻게 그처럼 위대한 작품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홍 교수는 여기에 어떤 ‘운명’적인, 필연적인 에너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바로 가족이다.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은 조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조부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제빵업자였으나 독일로 와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 바로 궁중음악가로 독일에 정착한 것이다.

반면에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아버지는 사기꾼에 난봉꾼이었다고 한다. 궁중가수로 취직하지만 실패한 아버지. 아들 베토벤을 팔아 돈을 버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베토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수치였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입은 이 같은 트라우마는 곧 베토벤에게 네거티브 성취동기로 작동한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아버지처럼 나는 살지 않겠다! 다르게 살아야겠다! 존경받으며 살아야겠다!    

그러면서 베토벤은 두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고 조카까지 돌보아야하는 소년가장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그의 ‘5번 운명 교향곡’에는 8개 음으로 이루어진 멜로디가 반복되면서 깔려있다. 이것이 무의식적으로 베토벤의 목덜미를 잡고 있는 운명을 표현하는 키워드라는 것이다. 베토벤의 비서이자 제자인 쉰들러의 증언에 따르면, 베토벤은 이 멜로디에 대해 “운명은 이처럼 방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그 문을 열면 늘 안 좋은 소식이 왔던.

‘자유’- 교향곡 제9번(Symphony No.9 in D Minor, op.125)

‘자유’는 교향곡 제9번의 주제라고 홍 교수는 소개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누구나 자유를 열망하지 않느냐면서, 홍 교수는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들려주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두렵지 않은 무념무상의 자유란 어떤 경지일까?

18C 계몽주의 시대 시민사회로부터 분출된 것은 자유와 평등이었다. 자유는 시대의 갈망이었던 것이다. 베토벤도 자유에 몰입했다. 그 염원으로 태어난 것이 교향곡 제9번이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이 교향곡은 처음에 합창곡으로 시작됐다가 30년 가까이 고치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 교향곡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살 것이라는 혁명적인 사상을 품고 있는 곡이라고 한다.

당시 귀족에 예속되었던 다른 음악가의 굴욕적인 삶과는 달리 베토벤은 프리랜서 작곡가였다. 악보를 팔았고, 음악회를 열었고, 레슨을 하면서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한 프리랜서였다. 홍 교수는 베토벤은 늘 그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향했다고 말했다.

‘불멸’ - 현악4중주 16번 4악장(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op. 135)

현악4중주 16번은 삶이 평탄한 적이 없었던 베토벤의 마지막 곡이다. 그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의 장기는 다 녹아내린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펜을 잡을 힘도 없을 때 이 곡을 만든 것이다.

작곡 중인 베토벤은 괴팍했다. 다듬고 또 다듬었다. 악보 스케치가 가장 많은 작곡가다. 쓰고 고치고 누더기가 될 때까지 곡을 다듬었다. 현악4중주 16번의 악보 스케치는 한 박스 분량이 남아있다고 한다.

베토벤은 그 악보에 이렇게 적었다. 잘 알아보기 힘든 글씨체로. 자신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 ‘고통스럽고 힘들게 내린 결심(Der Schwergefasste Entschluss)’
- ‘꼭 그래야만 하나?(Muss es sein?)’
-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

그만큼 베토벤은 그 무엇이든 그 어떤 순간에도 최상의 것을 지향했다고 한다. 음악은 물론이다. 월급을 이만큼 주어야하나 하면서 가정부 월급마저 고민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곡은 계속 묻는다. “Muss es sein?” 그래, 아무리 불이익이 있더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Es muss sein.” 이처럼 매순간 철저하게 자신에게 질문하며 살아왔던 베토벤이었던 것이다.

죽기 직전, 베토멘의 마지막 말은 뭐였을까? 쉰들러에 따르면, ‘박수를 쳐라, 희극은 끝났다.’였다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려 그렇게도 노력했던 베토벤. 홍 교수는 베토벤이 죽음에 이르기 전 삶이 한편의 연극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주어진 삶에 충실했다, 그러니 박수 받아 마땅하다!

괴팍함과 철두철미함, 언제나 최상의 가치를 지향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고자 했던 불멸의 작곡가 베토벤.

홍 교수는 “베토벤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베토벤의 반만큼이라도 우리 모두 매순간 최상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고민하면서 살 수 있다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의 세번째 강의 ’바흐’는 7월24일 오전 7시 같은 장소에서 이어진다. 강의 참가 문의는 051-629-5091~3 부경대학교 대외협력과. <부경투데이>


△ 강의를 하고 있는 홍승찬 교수.

△ 인문학콘서트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