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를 보면 부산이 보인다 |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19-12-09 |
| 조회수 | 367 | ||
| 상하이를 보면 부산이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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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학교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단장 손동주)과 국제신문 공동기획 <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의 44회 시리즈 기사의 키워드는 ‘부산과 상하이’였다. 부경대 안승웅 교수(HK+사업단)는 4일 국제신문 20면에 실린 ‘닮은 듯 다른 부산·상하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상하이를 통해 본 부산의 길’을 모색했다. 안 교수는 중국 상하이에서 3년 동안 유학하면서 “부산 사람과 상하이 사람은 성격상 비슷한 점이 많다고 종종 느꼈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다소 거친 면이 있지만, 솔직하고 개방적이며 정도 많다. 어디 가든 고향 말투를 버리지 않으며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이런 특징은 부산과 상하이가 동북아해역 중심도시로서 근현대시기 거친 역사의 파고를 함께 헤쳐 왔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가 꼽은 부산과 상하이의 역사적 공통점은 무엇일까? 먼저 그는 두 도시가 “근대시기 외세 침략에 의해 개항돼 식민지 약탈정책의 일환으로 근대적 항구도시로 개발됐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부산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약탈을 위한 기반을 다져나가는 과정에서 부산은 근대적 해항도시로 변모했다.”면서, “상하이는 중국 내륙 깊숙이 이어지는 창장(長江) 입구에 있어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가 일찌감치 눈독 들였다.”고 설명했다. 두 도시의 두 번째 공통점으로 그는 “전란(戰亂)으로 도시 규모가 확대된 공통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1945년 당시 30만도 되지 않았던 (부산) 인구가 피란민이 대거 정착하면서 1955년 100만 명이 넘어 명실상부한 한국 제 2의 도시로 자리 잡았다.”고 했고, “상하이도 아편전쟁 이후 창장 이남을 중심으로 태평천국이(1850-1864) 건국됐는데, 태평천국 전란을 피해 수많은 사람이 조계가 설치돼 외국 군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상하이로 몰려들었다.”고 밝혔다. 두 도시의 세 번째 공통점으로 그는 “근대적 항구도시로 발전하면서 바다를 통해 그 어느 도시보다 외국 문화, 특히 대중문화를 빨리 받아들였다.”는 점을 꼽았다. 그 사례로 그는 “부산에서 유행하면 한 달쯤 지나서야 서울에서 비로소 유행할 정도로 부산의 대중가요는 앞서가고 있었다.”는 점을, “1927년 ‘중국영화산업연감’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출품한 영화가 전국적으로 178편이었는데 이중 172편이 상하이에서 제작됐다.”는 점을 각각 꼽았다. 이렇게 공통점이 있는 두 도시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안 교수는 “부산과 상하이는 둘 다 양국 최대 항구도시이다. 하지만 부산은 제 2의 도시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 하는 반면, 상하이는 명실상부 중국 대표 거대 도시이다.”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상하이는 부산보다 면적이 약 8배 넓고, 인구는 7배 많으며 도시 총생산도 격차가 크다.(부산 2017년 83조 원, 상하이 2018년 500조 원) 안 교수는 “상하이가 했다면 부산이 못 하리라는 법이 없다.”면서, “상하이가 발전한 것은 바다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었고 대륙이라는 거대한 배후 지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도 관문도시로 바다를 향해 그리고 하늘로 향해 24시간 열려있게 되고, 통일 후 유럽에 이르는 철로가 연결돼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을 배후지로 가지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부경투데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