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디(3D)’ 아닌 ‘쓰리디(3D)’로 읽는 까닭은? |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19-10-08 |
| 조회수 | 336 | ||
| ‘삼디(3D)’ 아닌 ‘쓰리디(3D)’로 읽는 까닭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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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학문, 한글의 적’
김영환 교수는 이 글에서 “조선에서 학문과 교육은 언제나 한문 읽기, 한문으로 쓰기였다. … 한문을 거룩하다고 여긴 것은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가 거룩한 진리와 학문의 언어였던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밝혔다. 그는 “유교에서 나온 우리의 오랑캐 의식, ‘작은 중화’ 의식이 큰 문제였다. 문명이란 중화되기다. … ‘언문’을 짓고 널리 쓰기는 ‘문명’에 거스르는 행위였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07년 ‘아륀지’ 소동을 언급하며 “1945년 이후에는 아메리카 따르기, 작은 아메리카 되기가 ‘문명’이 됐다. 영어 몰입 강의, 영어 논문 쓰기 우대를 통해 지금도 맹렬한 기세로 번져가는 영어는 옛날 한문과 엇비슷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삼디(3D) 업종’식으로 읽다가 ‘쓰리디(3D) 프린터’로 바꾸어 읽는 관습이, 영어가 ‘선진화’ 또는 ‘문명화’의 상징이 된 현실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라면서, “문명과 학문이 우리 말글 천대의 명분이 되는 오랜 ‘전통’에 대해 비판적 반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부경대학교 김영환 교수(신문방송학과‧한글철학연구소장)의 칼럼 ‘문명과 학문, 한글의 적’이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한겨레신문 25면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