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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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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본 부경대학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5-01-31
조회수 6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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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본 부경대학교!
관리자 2005-01-31 6444

아래 글은 중앙일보 시리즈 보도물인 ''대학 구조조정 회오리''의 세번째 기획 ''통합대학 경쟁력이 뛴다''를 주제로 2005년 1월 28일 중앙일보 5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대학 구조조정 회오리] 3. 통합대학의 경쟁력이 뛴다 대학 합치니 교육 투자↑ 인지도↑ "합치기 전에는 소규모 지방대학에 불과했지만 통합 후 단숨에 대규모 국립종합대로 우뚝 서게 됐습니다. " 1996년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가 합쳐 만들어진 국립 부경대의 목연수 총장은 "통합은 단순한 산술적 합계 이상의 성과를 거둬야 의미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통합을 이룬 대학들은 마치 인수합병(M&A)에 성공한 기업처럼 덩치뿐 아니라 경쟁력도 키울 수 있었다. 중복되는 학과. 전공을 통폐합하고 정원을 줄여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관리인력과 운영비를 대폭 줄인 데 힘입은 것이다. ◆ 높아진 경쟁력=통합 전 부산수산대는 학생 8000명에 교수 247명, 부산공업대는 학생 1만4400명에 교수 221명이었다. 두 대학 모두 종합대로 분류되고는 있었지만 전국 굴지의 종합대와 경쟁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통합 후 사정이 달라졌다. 학생과 교수 수가 각각 1만8154명과 527명으로 늘어 규모 면에서는 국내 유수 대학과 대등한 수준이 됐다. 캠퍼스와 건물도 훨씬 여유 있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교수들이 외부에서 끌어오는 연구비 규모가 늘었고 대학 인지도 역시 크게 올랐다. 이렇게 되자 우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신입생들의 입학 성적도 큰 폭으로 뛰어 올랐다. 권혁무 기획처장은 "통합 전후 교직원 수가 511명에서 388명으로 줄었다"며 "규모가 2배 이상 커진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슬림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관리. 운영의 효율화로 아낀 재원을 교수. 학생을 위한 재투자에 쓸 수 있게 됐다"고 기대했다. 경남 양산에 있는 영산대도 통합으로 경쟁력을 높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대학은 같은 학교법인에 속한 성심외국어대(2년제)를 합쳐 하나가 됐다. 통합 전 두 대학의 입학정원은 모두 4500여명(영산대 2240명, 성심외대 2300명)이었다. 그러나 통합 후에는 정원이 2740명으로 통합 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로 인해 학생 1인당 교육여건 지표들이 크게 개선됐다. 통합 전 84.3%였던 교원확보율은 107.6%로 높아졌고, 교사(校舍) 확보율도 97.6%에서 155.3%로 개선됐다. 교육부 기준에도 못 미쳤던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은 종전의 3배 가까이로 높아졌다. 2000년에 합친 부산가톨릭대와 지산보건전문대(2년제)도 영산대와 비슷한 효과를 누렸다. ◆ 통합의 부수적 효과=대학이 스스로 기존 학과. 전공을 없애거나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해당 학과 교수와 학생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통합은 이런 문제점을 줄여준다. 부경대로 합치기 전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에는 각각 42개와 30개 학과가 있었다. 두 대학의 학과 중 경영.무역.기계공학.토목공학.전자공학 등 10개 학과가 중복됐고, 학과 이름과 내용이 서로 비슷한 경우도 3개가 있었다. 통합과정에서 이들 13개 학과와 4개 단과대학, 1개 대학원이 합쳐졌다. 대학 통합은 새로운 학과.전공의 도입을 시험하는 계기로 활용되기도 한다. 부경대는 중복 학과를 없애면서 관광경영학과.멀티미디어공학과.유아교육과.위성정보과학전공 등 신규학과를 개설했다. ◆ 화학적 통합이 과제=통합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년이면 통합 10주년을 맞는 부경대는 여태껏 통합 대학의 상징물을 정하지 못했다. 통합 이전 부산수산대의 상징물은 백경(흰 고래)이었고 부산공대는 청룡이었다. 그동안 새로운 상징물을 만들고자 했으나 양 대학 출신 동문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통합 이전 각각 수십년씩의 연륜을 가진 대학으로 수많은 동문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합의를 이끄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리적 통합은 가능하지만 교직원.학생 뿐 아니라 동문과 지역사회를 완전히 동화시키는 화학적 통합은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목연수 총장은 "2006년까지는 새 상징물을 완성하기로 하고 광범위한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통합의 가시적 성과로 알려진 직원 감축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경대 관계자는 "중복 인력이 보인다고 바로 해고 등 구조조정을 할 수는 없었다"며 "정년퇴직 등 자연감소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줄여야 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남중 차장.이승녕·하현옥·한애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