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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저녁, 문태준 시인이 왔다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2-11-13
조회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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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저녁, 문태준 시인이 왔다
대외협력과 2012-11-13 1597



시를 쓰는 부경대생이라면, 이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다. 문태준 시인이 왔으니까.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불교방송 PD,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해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동서문학상 등을 받은 시인. 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가재미’), 가장 좋은 시집(‘맨발’)을 쓴 이.

11월 9일 오후 그는 부경대 중앙도서관 영상세미나실에서 국어국문학과의 초청으로 부경대생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
 
아마 잽싼 부경대생이라면, 이날 ‘한 소식’ 들었을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이날 자세하게 자신의 시작법을 공개했는데, 그의 말과 말 사이에서, 각자 나름대로의 어떤 비기를 하나씩 꺼냈으리라.

시를 쓰는 데 정해진 법도 같은 건 없겠지만, 이 멋진 시인은 시를 어떻게 쓰는 것일까 하는 점은 독자들에겐 늘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어느 날, 문 시인은 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아마 딸인 듯싶다. “얘야, 팔이 아프겠구나.” 그 문장이 문 시인의 귀에 내려앉았다. 얘야, 팔이 아프겠구나. 이 말이 씨앗이 되어 완성된 시가 그의 ‘구겨진 셔츠’이다.


△ 문태준 시인. ⓒ이성재 사진(홍보팀)
<구겨진 셔츠>
- 문태준

벽에 셔츠가 걸려 있다
겨드랑이와 팔 안굽이 심하게 구겨져 있다
바람과 구름이 비집고 들어가도
잔뜩 찡그리고 있다
작은 박새도 도로 날아 나온다
저 옷을 벗어놓은 몸은
오늘 밤 자고 나도 팔이 아프겠다
악착같이 당기고 밀치고 들고 내려놓았을
물건들, 물건 같은 당신들
벽에 셔츠가 비뚜름히 걸려 있다
오래 쥐고 다닌 약봉지처럼 구겨진 윤곽들
내심에 무엇인가 있었을
내심으로 더 많은 구김이 졌을
- 시집 ‘그늘의 발달’-문학과 지성사(2008)


이처럼 그는 “시가 곳곳에서 온다. 돌연하게 온다.”고 했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제목으로, 또는 문장으로 오기도 한다고 했다. 외계와 내심이 접촉하고 서로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다가 은밀하게 쑤욱 내면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시가 왔을 때, 그는 ‘존재해야할 유일한 구조’를 찾기 위해 곰곰이 구상한다. 머릿속에 들고 다니며 계속 생각한다. 첫 느낌을 가지고 가설도 하면서 충분히 구상하여 어느 정도 완벽하게 만든 다음, 머릿속에서 완성됐다는 느낌이 오면, ‘가장 좋은 시간’을 골라서 종이 위에 쏟아낸다.

그가 말하는 가장 좋은 시간은 주로 새벽이다. ‘비오는 저녁’도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했다. 저녁에 비가 오면 그는 약속을 미루고 시를 쓴다.

컴퓨터를 켜고 편지쓰기를 한다. 나한테 보내는 이메일이다. 가능한 그날에 마무리되도록 한다. 잘 완성되지 않으면 약간 멀찍이 밀쳐둔다. 무관심한 척 하면서, 계속 거기를 곁눈질하면서, 약간 외면하는 듯하면서.
 
그러나 말은 쉽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문청들은 다 안다. 그래서 그는 팁을 또 던진다.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을까.

게으르면 시가 태어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걷는 것을 좋아해 산에, 북한산에 자주 가는데 계속 생각하면서 산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산을 내려오다가 누가 '오이 세 개에 천원!' 하면 고안한 한 줄의 문장, 금방 다 잊어버린다. 빨리 메모를 하라는 말이다.

새벽에 시를 쓰는 그를 생각한다. 그는 아파트 베란다에 목을 빼고 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혼자 깨어, 아마 세탁기가 있는 뒷베란다일 것이다, 자라처럼 목을 아파트 창밖으로 빼고 담배를 피우는 시인의 모습은 참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조금 전에 생각난 좋은 문장이 담배를 피우는 그 짧은 사이 까먹는 일이 다반사란다.

그는 깎은 사과가 변질되듯이 시의 문장이 변화된다고 말했다. 발생하는 그 순간, 열심히 기록해야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그는 술자리에서라도 좋은 문구가 생각나면 자신에게 문자를 계속 보낸다고 했다. 그에게 자꾸 문자가 ‘웅웅~’ 하고 들어오니까 옆 사람이,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눈총을 주었을 정도. 핸드폰 메모장 기능을 몰랐던 것이다. 지금은 메모장에 쓴단다.

“좋은 시를 많이 읽어야한다.”고도 했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시들을 보고 있다.”고 했다. 시집은 물론 잡지, 신문에 난 시까지. “요즘에는 일간 신문에도 시가 많이 소개되니까 이런 시를 찾아 읽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좋은 시집을 한 권 들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읽을 것을 권유했다. 계속 시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럼, 시를 어떻게 읽어야할까? 그는 “이 시는 어디서 발아 됐는가?, 그것만 추궁하라”고 했다. 시를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그 ‘울음터’를 찾으라는 것이다. 어디서 시의 몸을 가지게 되었는지, 비롯된 곳을 보라고 했다. 그리고 “상상력으로 창작과정에 참여하라”고 말했다.

그는 “시가 어디서 촉발되었는지, 발아되었는지를 많이 본 뒤에, 이기대나 태종대를 걷다보면 곳곳에 시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거기서 “시는 태어난다.”고 했다.

문 시인은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그것은 두 가지였다. 먼저, 존재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외물이나 내심이나 모두 변한다는 것을. 그 다음은 실체라는 것이 없다는 점을 탐색하고 싶은 것이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관계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만큼 상대도 존중해야하는 이유다.

시의 역할에 대해 말하면서 그는 백석의 ‘광원(曠原)’을 소개했다.

광원(曠原)
- 백석

흙꽃 니는 이른 봄의 무연한 벌을
경편열차(輕便列車)가 노새의 맘을 먹고 지나간다

멀리 바다가 뵈이는
가정거장(假停車場)도 없는 벌판에서
차는 머물고
젊은 새악시 둘이 나린다

문 시인은 이 시를 읽어주면서, 이 시가 독자를 만주의 광활한 들판으로 순간 이동시켜준다고 했다. 단조롭고 끊임없이 펼쳐진 들판에 새로 결혼한 아낙 2명이 내리는 장면은 우리를 우주적 존재 차원으로 데려가 주기도 하고, 큰 생명의 세계로 우리의 사고를 끊임없이 개방시켜준다고 했다. 그것이 시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말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해석되는 시란 없다.” 왜 이 단어가 이 자리에 있어야하는가?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시란 없다고 했다. 어떤 해석이 독자들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한 짐작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뿐.”이라고 했다.
 
그가 불교방송 PD여서인지, 종교와 문학에 대한 학생의 질문도 있었다. 그는 “문학과 종교가 서로 동떨어져 있어야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 찬성할 수 없다.”면서, “적절한 긴장관계 유지한다면 종교적 내면은 문학 정신을 더 웅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90여분 동안 자신의 내면을 훌러덩 보여준 뒤 문태준 시인은 좀 이른 저녁식사를 하러, 가을 참새처럼 지저귀는 부경대생들과 함께 향파관 뒤편 쪽문으로 총총히 사라졌다.<부경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