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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학교 톺아보기 | 정문기 학장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3-06-07
조회수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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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학교 톺아보기 | 정문기 학장
대외협력과 2013-06-07 1912



최근 정문기 부경대학교 전신 부산수산대학 학장에 대한 뉴스가 잇달아 눈길을 끌었다.

정 학장은 1947년 4월 1일부터 1949년 8월 26일까지 부산수산대학 학장을 지냈다. 제2대 학장이었다. 1929년 동경제국대학 농학부 수산과를 졸업한 정 학장은 대학에서 수산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꼽힌다.

「부산수산대학교 50년사」에 따르면 수산학을 전공한 정 학장은 한국 유일의 부산수산대학에 각별한 애착심을 가지고 육성하는 등 학교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47년 7월부터 미군정청 수산국장으로 임명돼 학장과 겸임한 그는 어선을 무상으로 불하하여 수대 실습어선으로 활용케 했고, 진해의 대구어장을 면허하여 실습어장으로 하는 동시에 청도의 한천공장을 불하하여 제조실습공장으로 활용케 하였다고 한다. 1995년 작고.

#.1 정문기 학장, 수산과학인 명예의 전당 1호 헌액 ‘영예’

정문기 학장은 수산과학인에게 최고 영예인 ‘수산과학인 명예의 전당’ 1호에 헌액(獻額)됐다.(2013. 4. 25.)

국립수산과학원은 수산 과학인들의 명예와 자긍심 고취를 위해 부산 기장군 기장읍 국립수산과학원 내 수산과학관 안에 ‘수산과학인 명예의 전당’을 개관하고, 첫 헌액 대상자로 우리나라 수산생물의 분류를 체계화하는 등 어류 연구와 수산발전에 기여한 정문기 학장을 선정한 것이다.

1898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정 학장은 수산 분야에 관심이 저조했던 시기에 바다에 희망을 걸고 어류 연구 등 수산발전에 공헌한 한국 근대 어류학의 태두로 꼽히는 인물이다. 부산수산대학장을 비롯, 농림부 수산국장 등을 지내면서 우리나라 어류 연구와 수산행정의 초석을 마련했다.

정 학장은 한국어원보를 저술하여 어류에 관한 우리나라 고문헌을 수집 정리하고 한국산 어종 872종의 분류학적 위치와 발생, 분포, 생태 등이 망라된 ‘한국어보도(韓國魚圖譜)’를 저술(1977)하여 한국 어족 분류를 체계화했다.

저서로는 ‘조선어명보’(1934), ‘조선 명태어’(1936), ‘한국어보’(1954), ‘한국동물도감 어류편’(1961), ‘새로운 해양지식’(1961), ‘어류생태학’(1968), ‘자산어보 국역’(1977) 등이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수산과학인 명예의 전당’에 수산과학분야의 선구적 인물인 정약전, 김려, 서유구 선생을 특별 헌액 대상자로 선정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수산과학인 명예의 전당’에 정문기 학장을 필두로 앞으로 3년마다 헌액 대상자를 선정해 우리나라 수산과학기술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알릴 계획이다.


△ 국립수산과학원 수산과학관 명예의 전당 모습. ⓒ이성재 사진(홍보팀)

#.2 박태일 교수, “정문기 학장, 대마도 한국 환속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칼럼 게재

경남대학교 박태일 교수가 4월 18일 국제신문에 ‘대마도 환속과 정문기’라는 제목의 인문학 칼럼을 게재, 대마도 환속을 위해 뛰었던 정문기 학장의 활약상을 자세히 소개해 지역사회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 칼럼은 1948년 정 학장이 펴낸 소책자 ’대마도의 조선 환속과 동양 평화의 영속성’에 대한 내용이다.

박 교수는 칼럼을 통해 “을유광복 뒤 혼란 속에서 대마도 한국 환속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가 수산인 정문기(1898~1996) 박사다.”고 소개했다.

칼럼에 따르면, 정문기 학장은 광복 두 달 뒤인 10월 15일 서둘러 ’대마도의 조선 환속과 동양 평화의 영속성’이라는 책자를 펴내 각계에 돌렸다고 한다. 이 소책자는 본문 22쪽 세 매듭으로 짜인 짧은 것이라고 한다. 칼럼은 ‘첫머리에 한글 소논문 ’대마도의 조선 환속과 동양 평화의 영속성’을 싣고, 이어서 ’대마도문헌고’를 붙인 뒤, 맨 끝에 소논문의 영문 번역문을 올렸다.’고 이 책자를 소개하고 있다.
 
정문기 학장은 이 책자를 통해 대마도를 하루바삐 우리에게 환속시켜야 하는 까닭을 밝혔다. 지정학적·역사적 사실에서 대마도가 우리 속령이었음을 밝히고, 문헌상으로 고려에서부터 조선 시대까지 대마도가 육백 년을 넘도록 우리에게 복속된 땅이었음을 적시했다.

박 교수는 “이 책자 말미에 백남운, 황의돈, 신동엽 세 역사학자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덧붙여둔 것으로 보아 대마도 환속은 정문기 개인이 아니라 광복기 뜻있는 지식인의 공통 염원이었음을 알게 한다.”고 칼럼에서 밝혔다.

이어 박 교수는 “정 박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노력은 드디어 1948년 2월, 입법원 204차 회의에서 대마도의 우리 영토 복귀를 결의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이어서 대한민국 건국 행정부 출범 직후인 1948년 8월 18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 반환 요구’를 발표했다. 그러자 저들은 대마도의 한국 관련 유적 지우기에 부랴부랴 나섰다. 지금부터 60년을 갓 넘긴, 가까운 시기의 옛일이다.”고 칼럼에 썼다.
 
그는 “1860년대 양요·쇄국에서 1910년 경술국치 사이,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들머리까지 50년 남짓 짧은 사이, 제국주의 침탈과 동아시아 근대 민족국가 수립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빼앗긴 땅이 남으로 대마도요 북으로 간도 벌이다.”면서, “대마도 환속 문제는 하루바삐 물 위로 드러낼 겨레의 과제다. 그리고 그 일은 일본의 독도, 동해 침탈 야욕 분쇄와 맞물려 있다. 우리의 바다 역사학·민속학·지정학·지역학의 꾸준하고도 깊이 있는 연구 역량, 성과 축적이 필요한 바다. 그 중심에 마땅히 바다 도시 부산 학계와 시민사회가 앞장 설 일 아닌가.”고 강조했다.<부경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