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12일자 중앙일보 Business & money 섹션에 눈길을 끄는 기사, 바로 부경대학교 명예총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기사였다.
이 기사는 동원그룹이 6월 11일 경남 창원의 한국폴리텍7대학 창원캠퍼스와 산학협약을 체결한 내용을 다루었는데, 거기 나온 김 회장의 메시지들이 톡톡 튀었다.
기사에는 동원그룹이 금융부문을 빼고 매출 4조1000억원, 16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소개됐다. 맨손으로 이 같은 성공 신화를 쓴 주인공의 말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김 회장은 부경대 전신 부산수산대 어로학과 54학번이다.
그는 이날 폴리텍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고 한다. 기사가 인용한 김 회장의 발언을 들어보자. “초임 백만 원을 더 주는 곳이 어디인지 기웃거리는 것은 자기 인생을 싸게 파는 것”이라며, “도전정신을 가지고 해외로 가라”고 주문했다.
기사에 따르면, 김 회장은 “기술과 영어가 능통한 인재들이 해외로 나가야 국운이 트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원이 인수한 미국 세네갈 등의 해외 업체에 한국 젊은이들을 보내면 일은 잘 하는데 영어가 안 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동원그룹은 이 대학 창원캠퍼스에 동원미래창조룸이라는 이름의 영어랩을 만들고, 동원실무영어 리더십과정 개설을 지원했다.
그는 이 기사에서 “한국인은 도전하는 DNA가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다음으로 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에 머무르지 말고 젊은이들이 해외로 나가야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중앙일보 기사는 동원그룹 2020년까지 매출 20조원대로 키운다는 김 회장의 계획을 소개했다. 김 회장은 “해외에서 자금조달도 어렵지 않고 외국 기업으로부터 인수 제안도 많은데, 정작 밖에서 일할 인재가 부족해 해외 사업을 적극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라’는 것은 김 회장이 기회 있을 때마다 젊은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자신이 쓴 성공신화도 그런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배경을 밝혀주는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를 더 소개한다.
"제(김재철 동원그룹 회장)가 농고를 다녔으니 당연히 농대로 가게 돼 있었죠(당시 그는 서울대 농대 진학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서울대 문리대를 나온 최석진 선생님(담임교사)이 어느 날 ‘너희들, 서울대가 최고인 줄 아는데 거기 나와 봐야 지금 나처럼 입씨름하며 살기밖에 더하냐? 나 같으면 바다 계통 학교 간다.’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중에 교무실로 찾아가 바다 계통 학교가 어떤 곳이 있느냐고 여쭸는데 선생님께서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가 살길은 바다에 있다.’고만 하시는 거예요.
부랴부랴 알아보니 부산수산대와 해양대가 있더군요. 해양대는 당시 교통부 산하 직업학교라서 학위가 안 나온다고 하기에 수산대를 선택했죠. 또 제일 좋은 과가 어디냐 물어보니 어로학과라고 해서 지원하게 된 거죠. 막상 입학해 보니 학교 건물은 미군에 수용돼 있는 터라 판잣집 같은 데서 수업을 받는 지경이었어요. 국내에선 공부하는 게 한계가 있구나 싶더군요.
그러다 졸업하던 해(1958년)에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 출항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왕이면 원양에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 원양회사(제동산업)를 찾아갔더니 절 우습게 보더라고요. 여기가 어딘데 너 같은 풋내기가 오느냐는 거였어요. 최초의 원양어선 출항이라 국내 최고 선원들만 탈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수산대도 나왔고 원양어선을 꼭 타고 싶다며 계속 떼를 썼죠.
그쪽에서 ’배에는 침대도 없다’고 하면, 난 ’그럼 침대 갖고 타겠다’고 맞받았어요. ’정말 가겠느냐’고 묻기에 ’정말 가고 싶다. 월급도 안 받고, 내가 먹을 식량도 갖고 타겠다. 죽어도 괜찮다’고 졸랐더니 ’밥은 먹여주겠는데 월급은 없다’면서 결국 허락하더군요. 나중에 승선할 때 야전침대를 짊어지고 탔죠. 그렇게 탄 배가 바로 ‘지남호’였습니다."
이 내용은 이코노미플러스 2011년 5월호 ‘21세기 장보고’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인터뷰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부경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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