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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투데이

  • 국립 부경대학교의 다양한 모습과 소식을 접하시면 부경대학교가 한번 더 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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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학교 톺아보기|백경동산 내력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3-09-30
조회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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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학교 톺아보기|백경동산 내력
대외협력과 2013-09-30 1692



△ 백경동산(사진 오른쪽 가운데)이 대연캠퍼스 가운데 솟아 있다.


부경대학교는 캠퍼스가 아름답다. 광안대교를 옆에 낀 대연캠퍼스,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용당캠퍼스.

이 중 대연캠퍼스는 완전 평지 캠퍼스로도 유명하다.

이  넓은 평지 한 곳에 봉곳이 솟은 백경동산. 평지인 대연캠퍼스의 가장 높은(?) 지대로 꼽히는 백경동산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난 9월 24일 부산 남구 향토지 제작을 위해 학교를 방문한 대연동의 토박이 이소명 씨(68세‧서예가·대연3동)로부터 그 내력을 들었다.

대를 이어 대연동에서 살고 있다는 그에 따르면, 백경동산은 황령산 → 경성대 → 부경대로 이어졌던 기다란 언덕의 마지막 부문이다. 긴 언덕이 사라지고 끝부분만 남게 된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부경대 대연캠퍼스는 전신 부산수산대가 있던 자리다. 부산수산대가 생긴 때는 1941년.

이소명 씨에 따르면, 부산수산대 부지에는 원래 용소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그 긴 언덕과 바다 사이에 옹기종기 집들이 자리한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던 것.    

학교 조성을 위해 이 마을은 현재의 대연캠퍼스 정문 건너편의 마을로 옮겨졌다. 그리고 기다랗게 늘어섰던 언덕도 깎여서 학교 부지용 평지로 조성됐던 것.

이소명 씨는 “당시 주민들은 그 긴 언덕을 ‘깨번덕’이라고 불렀다.”면서, “그 언덕은 황령산 → 경성대 정문 오른쪽 상가 → 21세기빌딩 → 평생교육원 → 본관 → 백경동산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부산수산대 부지 조성을 위해 ‘깨번덕’을 허무는 작업에 동네사람들이 동원되었고, 어머니도 그 작업에 참여했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이 씨와 동행한 문영백 씨(71세‧부산남구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는  “갯가에 있는 언덕이라고 해서 ‘갯언덕’이라고 불리다가 ‘깨번덕’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언덕의 마지막 부문으로 남게 된 백경동산. 이 아담한 동산은 부산수산대가 1941년 태동했던 당시의 모습을 현재까지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장소인 셈이다.

백경동산 옆 양식장 근처는 황령산에서 흐르는 물이 고여 만들어진 커다란 늪이 있었다고 한다. 이 늪은 부산예술회관과 부산교통방송국, 대천초등학교를 포함하여 7,000여 평에 달했다.

현재 우람한 소나무들이 들어선 백경동산은 부경대 구성원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백경동산의 숨은 내력은 부경대가 지역주민들의 삶과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주변의 사물들은 어떤 놀랄만한 내력을 숨긴 채 무표정하게 있는 것일까. 그 내력을 알고 나니 학교의 이웃들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부경투데이>


△ 1958년도 부경대 전신 부산수산대학교 일대의 모습. 아직 용호만이 매립되기 전의 모습이다.


△ 50여년이 지난 현재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 일대의 모습.


△ 한국전쟁 전후의 미군방송국(왼쪽) 건물과 현재 워커하우스(돌집)의 모습. 워커하우스는 6·25 전쟁 당시 미8군 사령부 건물로 사용됐으며, 복원을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