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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처음 밟은 한국인은?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4-02-24
조회수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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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처음 밟은 한국인은?
대외협력과 2014-02-24 1896



우리나라 최초로 남극대륙을 밟은 사람은 부경인이었다.

영예의 주인공은 이병돈(1928년∼1995년) 동문이다.


△ 이병돈 동문.
지금은 고인이 된 그는 부경대학교 전신 부산수산대학교 수산생물학과를 1949년에 졸업했다. 부산수산대 증식학과 교수, 부산수산대 14대 학장(1981.9∼1985.9), 한국해양연구원 초대 원장, 동의대 총장 등을 지냈다.

그는 어떻게 남극을 방문했던 것일까?

국제신문은 2월 24일자 2면에 이병돈 동문이 1963년 미국 유학 때 우리나라 최초로 남극대륙을 밟았다고 보도했다. 남극 해양생물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적 연구를 한 주인공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이에 앞서 조선일보도 2010년 2월9일자 33면에 「대한민국 제1호」라는 시리즈로 ‘남극탐사’ 부문 1호로 이병돈 동문을 보도한 바 있다.<기사 바로 보기 클릭>

2월 24일자 국제신문 기사를 읽어보자.

이 기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남극대륙을 밟은 사람이 고 이병돈 부산수산대 교수라는 사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면서,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준공을 계기로 극지에 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부산지역 대학교수가 남극에 처음 가서 극지와 해양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서 부산이 극지 연구의 허브로 자리매김하는 데 힘이 실릴 전망이다.”고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교수는 1963년 3월 6일 미국 텍사스 A&M대학 박사과정 유학 시절 미국-아르헨티나 공동남극해양조사단 연구원으로 아르헨티나 해군 조사선 ‘카피탄 카네파’호를 타고 남극대륙의 알미란테 브라운 기지를 방문했다고 한다.

기사는 “이는 1978년 12월∼1979년 3월 우리나라 크릴 조사선 남북호, 1985년 11월∼12월 남극관측탐험대의 남극 진출보다 각각 15년, 22년 앞선 것이다.”고 밝혔다.

기사는 이어 “이 교수는 같은 해 9월과 1964년 7월에도 남극을 찾았으며, 현재 세종과학기지가 있는 킹조지섬 북쪽의 드레이크 해협에 서식하는 동물플랑크톤의 분포와 생물량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1965년 11월 귀국했다.”고 소개했다.

이런 내용은 국제신문 1965년 11월 20일 자에 ‘남극대륙을 밟은 사나이, 부산수대 이병돈 교수’라는 제목의 기사로 대서특필되기도 했다고 한다.

기사는 “그는 크릴이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기사는 “인류가 1년 동안 소비하는 수산물의 양이 1억t인데 비해 10억∼50억t에 이르는 크릴의 자원량은 이미 반세기 전부터 해양생물학자들에게 관심을 받아왔음을 알 수 있다.”고 소개했다.

부산수산대가 발행하던 대학신문인 ‘수대학보’를 찾아보았다.

1965년 11월 30일자 ‘수대학보’에 그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다음은 당시 학보에 실린 기사 전문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그것도 세 번씩이나 남극을 탐험하면서 남극해의 동물성 부유 생물의 분포와 생산량을 연구하여 미국AM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획득한 이병돈교수가 귀국한 것은 지난 30일 오후 1시였다.

본교 교수들과 학생들의 환영을 받으며 수영공항에 내린 이병돈 교수는 그의 귀국소감을 통하여 우리나라도 모두 협력해서 이 어려운 난관을 뚫어나간다면 충분히 선진제국을 따를 수 있다고 귀한 제1성을 발했다.

왕년에 본 대학 증식학에서 교수 봉을 잡고 젊음을 발휘하다가 뜻하는 바가 있어 미국으로 건너가 계속 연구하여 텍사스 대학에서 동물학 및 해양과학연구로 석사학위를 획득 본학으로 면의 환향하게 된 이 교수는 본부와도 깊은 관계가 있어 떠나시기 전 1959년 1월까지 수대학부 주관으로 활약한 바가 있다.

AM 대학에서 연구 중이던 1963년에는 캐나다 및 남미제국의 수산업을 시찰하면서 미주의 수산업을 두루 살펴보았는데 소감을 통하여 “그들의 체계 잡히고 대규모적인 수산업에는 놀랐다. 우리나라도 백배 노력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차 남극으로 떠난 것은 63년과 64년의 일인데 거센 눈보라와 싸우고 남극조 펭귄과 벗하면서도 그는 한국을 생각했고 모교를 생각했다고 한다.

남극해역관측선 수로호(아르헨티나 해군연구선)을 타고 남단 에르미랑떼·브라운 기지까지 항해하여 80개 지점에서 관측 및 해수를 채집한 그는 피땀 흘린 고된 연구의 결과로 금년 10월 AM 대학에서 ‘남극과 아르헨틴 대륙에 있어서의 동물 부유생물의 분포 및 생산량’이란 논문으로 Ph.D학위를 차지한 것이다.

6년 만에 돌아온 캠퍼스는 많이 정돈되었고 아담한 학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피력하는 이 교수는 앞으로 증식학과에서 해운대의 임해연구소를 맡아 수산 및 해양에 관한 기초연구를 하게 될 예정이다.

6년 간 미국의 텍사스대학 AM대학 해양과학연구소 등에서 연수하면서 북남미는 물론 남극에까지 미친 대단원의 재미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 교수에 대한 기대는 크다.』(수대학보 1965년 11월 30일자 기사)
<부경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