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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4-03-18
조회수 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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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대외협력과 2014-03-18 2708




△민병일 명예교수. ⓒ이성재 사진(홍보팀)
그는 부경투데이와의 인터뷰를 사양하며 약속 날짜를 한번 어겼다. 학교현장에서 '예편'한 사람이 인터뷰하면서 자꾸 얼굴 내밀면 주위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경투데이는 2008년 정년퇴임한 그가 대한민국의 중견 디자이너로서 그동안 국내외디자인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공적을 인정받아 최근 한국시각디자이너협회로부터「대한민국디자인 공로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리 인터뷰 요청을 했던 터였다.

“상 받은 일이 뭐 그리 대수라고?” 하는 그와 “그래도 백전노장의 삶의 비기(秘技)를 들려주십사.” 하는 취재팀이 몇 번의 ‘밀당’ 끝에 3월 14일 오전 동원장보고관 라운지에서 가까스로 만났다.

그가 부경대학교 디자인학부 민병일 명예교수(70세)다. 

대한민국디자인 공로상을 받다

진한 갈색 재킷을 입고 나타난 그는, 재킷 안에 받쳐 입은 연한 갈색 코르덴셔츠의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서 어떤 완고함이 느껴졌다.

그래, 패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그는 디자이너이면서도 옷차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지도 않으며 편하고 디자인만 마음에 들면 된다고 한다. 그는 “차림새는 그 사람의 내면을 말해준다.”고 했다. 오래전 일본 출장길에 샀다는 연청색 서류가방, 숫자 자판이 크고 둥그런 클래식한 손목시계도 올해 고희(古稀)가 된 그와 잘 어울렸다. “그 사람의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그 사람의 옷차림”이라는 그의 말을 빌어서가 아니라 그의 생활은 매우 단정하고 매끈한 것 같았다.

부산시문화상, 봉생문화상, 부경대학술상, 부산디자인대상, 한국비쥬얼디자인학회 최우수논문상, 부산산업디자인전람회 초대작가상, 부산미술대전·부산산업디자인전람회·한국디자인대전 심사위원장, 국제환경예술제운영위원장, 한국국제포스터대전 초대작가 등...

이것이 그의 이력이다. 정말 화려하다. 굵직한 상은 다 탔다. 이 이력은 그가 부경대 교수로 활동하던 때의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2008년 8월 부경대 교수 퇴임 이후의 그의 행보를 짐작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퇴임 후 시인등단 … 철학박사 취득 … 우이동 교회 설계


△우이동 교회 조감도.
그는 2010년 시인이 되었다. 그의 나이 66세였다.「부산시인」,「부산시선」을 통하여 ‘일상에서’ 외 3편으로 등단했다. 그 후 「해운대 문학」을 통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시인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은 사석에서 “민 교수의 글은 매우 쫀득하다.”고 평한 바 있다.

이어 2011년 8월에는 대구가톨릭대에서 미학전공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67세 때였다. 당시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민 선생님이 우리 대학 최고령 박사이십니다.”라고 축하했다고 한다. 그는 1997년 이 대학의 석·박사과정에 입학해 2000년 수료했다가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따내는 노익장을 과시했던 것이다.

그는 일찍이 도시철도 2호선의 감전, 개금, 구명역사의 인테리어를 했다. 2010년에 들어서는 토탈 건축디자인까지 했다. 해운대의 ‘우이동교회’가 그의 작품이다. 수많은 디자인 작품을 창작한 그였지만, 독립된 건물의 건축디자인 설계로는 처녀작이다. 투명하고 기하학적인 정면의 다이아몬드 유리 구조물과 PSG 공법으로 만든 캐노피에 남달리 애착이 간다고 했다. 광안대교(다이아몬드브릿지) 램프 끝머리에 있는 교회로 다이아몬드 컨셉이 잘 나타나 있고 유려한 디자인과 조형성을 자랑한다.

그는 홍익대 미대 출신이다. 63학번이다. 서울이 고향이고 2남1녀의 막내다. 당시 경기도의 일선 군수였던 아버지는 그 즈음 산업화에 편승하여 인기 있던 이공계 진학을 희망했지만, 막내의 길을 막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 디자인 계열이 사회 진출이 쉬울 거 같아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한다. 막내의 자유! 이것이 그의 삶을 이쪽으로 이끌었던 것이다.(1982년 홍익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일본 후쿠오카공대 CG연구과정을 부산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수료했다.)
 
그는 1967년 대학을 졸업한 뒤 남해여고 미술교사로 교단에 첫발을 디딘다. 부산으로 와 부산여대 전신인 부산여자고등전문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1969년). 동명대학교 전신인 동원공업전문대에 디자인학과 교수(1979년)로, 부경대 전신의 하나인 부산공업대 디자인학과 교수(1989년)로 부임했다. 이 두 대학의 디자인학과 창설에 관여했다. 그리고 1996년에는 남 오스트렐일리아 대학의 교환교수를 역임했다.

부산 디자인분야를 개척한 1세대


△ 부산광역시 등 여러 단체들의 CI
디자인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1967부터 2008년 퇴임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디자인을 가르치며 이 분야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던 그를 디자인계에서는 ‘부산 디자인분야를 개척한 1세대’로 꼽는다. 그 사이 ‘디자인은 무슨 디자인!’ 이라던 인식은 ‘디자인은 최고의 경쟁력이다!’로 변모했다.

그 극과 극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그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전공분야는 시각전달디자인(Visual Communication Design)이다. 정보를 시각적으로 호소하여 전달하는 디자인 분야다. 신문, 잡지 같은 인쇄물뿐 만 아니라 TV, 애니메이션, 영화의 크레딧과 시퀀스, 사진, 사인 보드, CI 등 모든 시각물에 관한 디자인을 총칭한다.

부산광역시 CI와 슬로건을 비롯 환경공단, 시설공단, 남구청, 영도구청, 수영구청, 부산은행 등 수많은 공공기관과 단체의 CI가 그의 손과 자문을 거쳐 나왔다. 현재 부산시립미술관이 매입하여 소장 중인 디자인 작품이 오직 한 작품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작품 ‘도학도’이다. 전통적 민속풍경을 테마로 그려진 작품이다. 가깝게는 용당캠퍼스 정문 상징탑과 중앙도서관 조형물, 대연캠퍼스 타임캡슐, 인문사회과학대학 파사드의 사인디자인, 환경·해양대학 내부색채 및 보도디자인도 그의 작품이다.

도시철도 연산역 10m짜리 벽화가 가장 애착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일까? 그는 부산도시철도 1,3호선 환승역인 연산역 승강장 내부를 장식한 길이 10m짜리 벽화를 꼽았다. 작품 이름은 ‘낙원’. 민화를 주제로 천여 개의 도자비트를 직접 구워서 만든 작품이다.


△ 벽화 ’낙원’

부경대 디자인학부는 국내외 공모전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인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으려면 공모전을 통하여 공인 받으라고 조언하며 학생들을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쳤다.”고 했다.

이탈리아 자동차산업 중심지인 피에몬테주 토라노시에 본사를 둔 카르체라노의 디자이너로 발탁된 윤수한 동문을 비롯, 미국 노스페이스 본사에서 디자이너로 뛰고 있는 김남희 동문, 최근 영화 ‘더 파이브’를 직접 제작 감독한 정연식 동문(만화 ‘또디’의 작가) 등 국내외 디자인계를 주름잡고 있는 숱한 인재들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제자들에게 까칠한 스승’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배움을 주고받는 강의실에서는 질서가 있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교문 밖으로 나오면 안 그랬다.”고 덧붙였다. 대학교수, 중등학교 교사, 전문디자이너로 뛰고 있는 많은 제자들이 주위에서 늘 그를 따른다.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 중요

이런 그에게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는 지나간 것,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우둔한 사람”이라면서, “현재에 충실하면 그것이 내일로 연결된다,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 “새로운 사람과 교제해야한다. 사람 속에 묻혀 살아야한다. 무리 속에서 얻는 철학이 많다. 그래야 다양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아침에 눈뜨면 ‘오늘 누굴 만날까?’ 하는 기대로 설렌다고 한다. “좋은 사람 만나는 게 제일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밖으로 나다니길 좋아한다.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면 다 만난다.”고 말했다.

문화콘텐츠 비평에 더 몰입하고파

요즘 그의 일상은 온통 미학(美學)에 빠져 지내는 중이었다. 미학은 자연이나 사물, 인생과 예술에 담긴 미의 본질과 구조를 밝히는 학문이다. 1997년부터 미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여 10년 만에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다. 센텀시티 안에 있는 부산디자인센터 자신의 연구실에서 보들레르와 쿠르베를 읽으면서 모더니티를 파고 있다. 6년째 월간 「부산상의」에 미술칼럼을 집필하고 있기도 하다.

1999년 그는 「박학한 무지」(한미서관 발행)라는 미학이론서를 펴내 학계와 매스컴의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유쾌한 만화교실」, 「디자이너를 위한 광고학」도 펴냈다. 역서인「일러스트 인쇄기술」은 인쇄정보공학과의 고 김성근 교수와 함께 집필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문화 콘텐츠 비평에 더 몰입하고 싶다.”고 말하는 일흔의 그에게서 열정이 물씬 느껴졌다. 그는 또 “부산의 주거공간 문화의 정신적인 미적 수용을 분석한 연구서도 내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서둘러 인사하고 가방을 집더니 자리를 떴다. 저 밖에서 그는 또 어떤 새로운 사람을 만나 특별한 에너지를 만들어 색다른 세계를 우리에게 펼쳐 보여줄 것인가?<부경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