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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 부경대학교의 다양한 모습과 소식을 접하시면 부경대학교가 한번 더 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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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수사원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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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수사원
대외협력과 2016-12-14 1881

자, 우리 함께 우리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볼까요?

그럼, 준비되신 분부터 ‘타임머신’에 차례차례 승차하세요.^^

첫 번째 타임머신은 ‘대학설치기준령에 의한 실태조사서(1, 2, 3차년도분)’라는, 오래되어 색이 샛노랗게 변한 한 뭉치의 문서랍니다. 


△ #1. 실태조사서 표지 사진. ⓒ사진 이성재(홍보팀)

부경대학교 시설과 박두민 시설기획팀장이 창고를 정리하다 발견, 보관하던 중 최근 부경대학교 기록관(관장 백인성 부총장) 주관으로 실시된 ‘부경대학교 역사자료 수집 공모전’에 제출해 최우수상을 받은 귀중한 자료죠.

1956년에 생산된 일반문서인데, 1956년부터 1960년도 사이 부경대 전신 부산수산대의 현황을 알 수 있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답니다.

1956년 7월 현재의 교원명부를 보니 김인배 전임강사 등 모두 28분이셨네요. 지금 부경대 교원이 600여분인데 정말! 그때 학생 정원은 1,040명, 도서는 4,771권으로 적혀있어요. 오늘날 학생 정원 25,000여명, 도서관장서 110만권에 비하면 정말!

이 문서뭉치는 이밖에도 수업시간표, 학과 현황 등 그 때의 학교 전반적인 현황을 담고 있어서 증빙적 가치를 비롯, 역사적 행정적 가치가 매우 큰 사료로 평가되고 있답니다.

아, 이 자료 속에는 1959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태풍 ‘사라(SARAH)호’의 내습으로 학교 기숙사 복도가 부서졌다는 기록도 보이네요.

박두민 팀장이 함께 제출한 사진도 매우 흥미로운 역사자료입니다. 맞아요, 우리 학교가 바로 바다였다니까요. 보세요. 


△ #2. 매립 전 캠퍼스.

그러니까 지금 대학본부 옆 솔숲(노르웨이숲)이 해변 모래밭이었다니까요. 정말 신기하시죠? 잠시 후에 저 해변 모래밭에서 ‘팬티’만 입고 단체체조를 하고 있는 우리 선배들의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그 해변과 바다를 매립한 곳에 바로 지금의 청운관, 가온관, 장영실관, 건축관, 인문사회·사회경영관, 호연관 등이 들어선 거지요. 


△ #3. 동국제강.

지금 LG메트로시티 자리는 원래 동국제강이라는 공장이 있었어요(위 사진). 그러니까 이 부지도 바다였고, 그 바다를 매립하기 전 당시 부산수산대 구성원들의 엄청난 반대에 봉착했지요. 바다가 매립되면 학생들이 수산 실습하고 해상 훈련하는 ‘바다 강의실’이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두 번째 타임머신으로 여러분을 초대할게요. ‘부경대학교 역사자료 수집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정상석 동문(부산수산대학 제조학과 54학번)의 사진 11장이 그것입니다. 


△ #4. 철조망 친 정문.

이 사진이 바로 1957년도 부산수산대 정문 사진입니다. 하하. 지금 대연캠퍼스 백경동산 뒤 부산교통방송국으로 나가는 쪽문이 그곳입니다. 이 사진 속 주인공은 4학년이던 정상석 동문. 오른쪽에 백경동산이 보이네요. 그런데 대학 정문이라기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철조망이 쳐진 대문이며 자그마한 명패…. 무슨 사연이 숨어있을까요?

부산수산대는 한국전쟁으로 학교건물을 징발 당했습니다. 강의실과 연구실 등 학교시설들이 미군병원, 스웨덴병원으로 사용됐죠. 그래서 학생들은 모두 지금의 영도 남항동 임시교사로 옮겨가 수업을 받았지요. 


△ #5. 1954년 5월 영도 임시 가교사.

아, 잠깐. 그때의 상황을 알 수 있는 한 동문의 발언록을 소개해드릴게요.

“당시 우리는 영도 수산진흥원 옆에 하꼬방을 지어 공부했답니다. 여름이 되면 교실에 물이 차 책상이 둥둥 떠다녔죠. 돌아보니 참으로 참담한 시대 대학시절을 보냈네요. 지금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때만큼은 아닐 테니까 용기를 가지라고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말씀은 (주)흥아 회장 정효택 동문(제조학과 53학번)이 모교 부경대에 10억 원을 기부하시며 가진 간담회에서 하신 말씀이랍니다. 좀 뭉클하지요? 힘!   

그러니까 위의 대학 정문사진은 영도 가교사에서 막 대연동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을 당시의 모습입니다.(1957년 3월) 그러니까 학교 모습을 제대로 갖출 여력이 없었던 때지요. 


△ #6~7. 제염실습.

1956년 9월의 모습. 사진 속 주인공들은 누구이며 뭘 하고 있는 중일까요? 부산수산대 제조학과 학생들의 제염실습 장면이랍니다. 이렇게 소금을 만드는(!) 실습을 했군요. 정말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입니다.


△ #8. 강의 노트.

정상석 동문(제조학과 54학번)이 보내온 자신의 대학시절 노트입니다. 1955년 5월 12일 필기를 시작했군요. ‘유기화학’이라는 과목입니다. 제조학과는 지금의 식품공학과인데, 노트에 보이는 깨알같은 탄소화합물 공식들은 지금도 시험을 앞둔 식품공학과 학생들이 저절로 비명을 지를 정도로 고난이도를 뽐낸다고 합니다.

파랑색 잉크를 채운 만년필이 하얀 노트 위를 사각사각 걸어갔네요. 노트를 조심조심 넘기니, 교수님의 판서를 하나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적었을 1955년 어느 날 강의실의 그 푸른 열정이 이렇게 뜨겁게 살아나네요. 강의실에 스마트폰도, 녹음기도, 카메라도 없던 날의 풍경이랍니다. 여러분의 강의노트는 이만큼 잘 되어 있나요?


△ #9. 졸업식.

1958년 부산수산대 졸업식 풍경입니다. 정상석 동문일까요? 졸업생 한 명이 단상 위에 올라가 엉덩이를 뒤로 빼고 졸업장을 받는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ㅎㅎ 단상 위에는 학장님과 보직교수님들이 앉아있고, 단 아래 의자에는 학사 석사 학위를 받을 졸업생들이, 그 옆에 보이는 일군의 무리는 졸업생 가족들이겠지요? 아주 화목한 가족적인 분위기^^


△ #10. 웅비탑.

정상석 동문의 기념사진입니다. 1995년에 찍었다고 합니다. 졸업하고 40여년 뒤 모습이랍니다. 웅비탑 좀 보셔요, 아니 그 뒤 대학본관을 보셔요. 웅비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있는데 그 배경이 확 달라졌네요. 지금 저 빨간 지붕을 보고 옛날이 그리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속으로 울까요? 

자, 세 번째 ‘타임머신’을 소개합니다. 이번 ‘부경대학교 역사자료 수집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장춘길 동문(부산수산대학 어로학과 59학번)의 사진 20장이 그것입니다. 그 중 몇 장면을 보여드립니다.


△ #11. 원영 준비체조.

하하, 모두 저마다의 육체미를 한껏 뽐내고 있네요. 1959년 부산수산대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체조를 하고 있답니다. 왜 수영복 차림으로 단체로 체조를 하고 있을까요?

바로 원영(遠泳)행사 준비운동이라고 합니다. ‘원영’은 말 그대로 먼 거리까지 수영하기. 동백섬이나 다대포 등까지 수영으로 완주해야하는 과목이랍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기 위한 교과목인데, 부산수산대 학생이면 누구나 거쳐야하는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 #12. 해군 ROTC 열병식.

1962년 부산수산대 해군 ROTC 열병식 장면입니다. 부산수산대 해군 ROTC는 전국 두 번째로 창단(1954년)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요. 열병식도 볼만하지만 그 뒤를 보셔요. 대학본부 건물이 아주 단아하지요? 그 뒤 황령산 풍경,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들. 다 어디로 간 걸까요? 


△ #13. 홍양호 출항식.

1962년 10월 어로학과 4학년 원양실습 출항식 사진이랍니다. 대만 기륭항으로 가려고 출항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군요. 여러분, 그 뒤의 배 보이시죠? 왜 실습선은 안보이고 작은 조각배가 있냐고요? 이 배가 그 실습선이라니까요. 부산수산대 실습선 1호 홍양호. 103톤짜리 목선이었죠. 정말 가랑잎 같은 배에 몸을 싣고 대만까지 갔던 겁니다.ㅠㅠ

우리나라 원양승선실습은 1957년 9월 부산수산대 학생들이 대만 기륭항까지 원양 항해한 것이 국내 시초랍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등 당시 부산수산대 54학번 학생 48명이 홍양호를 타고 험난한 파도를 넘어 기륭까지 715마일(1,150㎞)을 항해해 원양승선실습의 항로를 처음 개척한 것이죠. 


△ #14. 홍양호 항해 장면.

그 이후 60년 동안 부경대 원양승선실습과 해양탐사에 활용돼온 선박은 홍양호를 비롯 행어호 자산호 백경호 오대산호 관악산호 새바다호와 현재의 가야호와 나라호에 이르기까지 무려 13척에 이른다는 말씀.

그래서 부경대는 원양어업을 처음 개척해 우리나라에 참치를 처음 들여온 대학,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청새치를 처음 잡아온 대학이 된 것이랍니다.

글을 마무리하려니 문득,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말이 떠오네요. 물을 마시면서 그 물이 처음 발원한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인데, 지금의 우리의 근원이 바로 언제나 ‘우리의 길 새로운 길’을 개척해온 우리 선배님들의 뜨거운 열정과 도전정신이었네요.

이번 부경대학교 기록관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부경대학교 역사자료 수집 공모전’에는 모두 23건 2,789점이 응모됐습니다. 장롱 깊숙이 보관 중이던 ‘보물’을 선뜻 보내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굿바이∼. <부경투데이>


△ 부경대학교 기록관(관장 백인성 부총장) 주관으로 실시된 ‘부경대학교 역사자료 수집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시설과 박두민 팀장(오른쪽)이 백인성 관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기념촬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