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부경대학교

검색

커뮤니티

 

부경투데이

  • 국립 부경대학교의 다양한 모습과 소식을 접하시면 부경대학교가 한번 더 가까워집니다.
작성자,작성일,첨부파일,조회수로 작성된 표
초량왜관 관수일기를 펼쳐보니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8-08-30
조회수 489
작성자,작성일,첨부파일,조회수로 작성된 표
초량왜관 관수일기를 펼쳐보니
대외협력과 2018-08-30 489



△ 박화진 교수의 글이 실린 국제신문 지면.

부경대학교 박화진 교수(사학과)는 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 31번째 이야기에서 ‘관수일기로 본 300여 년 전 부산포 날씨’를 소개했다.

29일 국제신문 22면에 실린 이 글에서 박 교수는 “전근대의 기후변화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급격한 기후변화는 백성들로 하여금 농토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유리·방랑하게 하여 수많은 경제 난민이 생겨나게 했다.”면서 날씨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소개했다.

박 교수는 “약 300여 년 전 한반도 동남쪽 국경 도시 부산의 날씨는 어떠했을까?”라면서, “1687년부터 1870년까지 무려 184년 동안 계속하여 기록했던 일본 측의 ‘초량왜관 관수일기’(館守日記·‘每日記’(매일기)라고도 함.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소장) 속에 동래부 부산포 기후 동향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수는 초량왜관에 있던 일본 측의 중요한 관리로 왜관 업무를 주관하고 왜관의 일본인을 통솔했다. 관수가 남긴 업무 기록이 ‘관수일기’인데, 초량왜관의 ‘관수일기’ 기록을 통해 당시 부산의 날씨를 비교적 생생히 복원해서 그 특징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넓게 보아 해양을 바탕으로 이뤄진 한국과 일본의 옛 교류, 즉 한·일 해양교류사의 한 측면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관수일기’에는 그날의 날씨(맑음·흐림·우천·반천·눈)와 풍향 등에 대해서 거의 매일 기록돼 당시 부산 지역민들의 생활상에 접근할 수 있어 대단히 흥미롭다.”고 말했다.

관수일기 내용을 바탕으로 박 교수는 “17세기 말 18세기 초의 약 10년 동안, 한 해 강우량이 특히 적었던 해는 1699년이다. 1699년(숙종 25년)은 9월에 윤달이 들어 있어 일 년 총 일수는 13개월 384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699년의 날씨와 풍향에 대해 정리해보면, 맑음 298일(78%), 흐림 33일(8%), 우천 22일(6%), 반천(半天) 13(3%), 기록 무(無) 18일(5%)로서 가뭄이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다. 한 달 30일 중에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달이 일 년 ‘13개월’ 중에 거의 10개월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만 2월(맑음 62%)과 6월(맑음 60%)에는 흐리거나 우천·반천 비율이 다른 달보다는 조금 높았다. 그러나 모내기철인 4월엔 우천 1일, 5월에는 우천 3일로 강우량이 너무나 부족함을 살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17세기 말 18세기 초 농업 중심 사회였던 부산지역의 긴 가뭄은 농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터이므로 동래부사 및 농민들의 가슴은 타들어 갔을 터.”라면서, “하지만 비 내리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하고 사회·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을 농업시대였던 그때, 부산 사람들이 겪었을 어려움과 고통은 더욱 크지 않았을까.”라고 썼다. <부경투데이>

▷ 기사 전문 읽기 “클릭!!”


▷ 다른 <해양문화의 명장면> 시리즈 보러 가기

<30> 조세현 교수 편 - 증기선 등장의 의미는?

<29> 신명호 교수 편 - 이순신장검을 감싼 것은 무엇일까?
<28> 김문기 교수 편 - 청어가 임진왜란을 알렸다고?
<27> 박원용 교수 편 - 모든 인간은 멋진 존재다!
<26> 이근우 교수 편 - 유구국은 어디일까요?
<25> 박화진 교수 편 - 성 스캔들로 효수형을 당하다
<24> 조세현 교수 편 - 화교들의 부산 정착기는?
<23> 신명호 교수 편 - 이 특별한 국 한 그릇에 대하여
<22> 김문기 교수 편 - 조선시대 민초들의 단백질 공급원은?
<21> 박원용 교수 편 - 포르투갈이 인도양을 점령한 사연은?
<20> 이근우 교수 편 - 일본보다 먼저 일본지도 인쇄했다
<19> 박화진 교수 편 - 초량외관은 어떤 곳이었나?
<18> 조세현 교수 편 - 영웅인가? 해적인가?
<17> 신명호 교수 편 - ‘북한으로 가는 바닷길’이란 말
<16> 김문기 교수 편 - 오징어가 불러온 훈풍
<15> 박원용 교수 편 - 해상강국이었기에
<14> 이근우 교수 편 - 기묘한 지도 한 장의 힘
<13> 박화진 교수 편 - 전근대 일본사회 ‘한류’는
<12> 조세현 교수 편 - 처음 대양을 건넌 이가 본 것들
<11> 신명호 교수 편 - 신명호 교수의 질문은?
<10> 김문기 교수 편 - 김문기 교수의 질문은?
<9> 박원용 교수 편 - 비운의 해적, ’키드’의 생애를 보았더니
<8> 이근우 교수 편 - 그래서 대마도 정벌에 나섰다
<7> 박화진 교수 편 - 박화진 교수의 질문은?
<6> 조세현 교수 편 - 조세현 교수의 질문은?
<5> 신명호 교수 편 - 신명호 교수의 질문은?
<4> 김문기 교수 편 - 김문기 교수의 질문은?
<3> 박원용 교수 편 - 박원용 교수가 본 ’해양문화의 명장면’
<2> 이근우 교수 편 - 사학과 이근우 교수의 질문
<1> 프롤로그 - 국제신문이 본 부경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