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야스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나?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19-03-21 |
조회수 | 623 |
메리야스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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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협력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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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학교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단장 손동주)과 국제신문 공동기획 <동북아 바다 …인문학으로 항해하다>의 열 번째 이야기 소재는 ‘박래품(舶來品)’이었다. 박래품(舶來品)이 뭘까? 양 교수는 “(박래품이란) 배로 들여온 물품이라는 뜻으로, 구한말 당시에는 서양에서 배에 실려 들어온 신식 물품을 그렇게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운요호 사건으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면서 1876년 부산항이 개항했고, 1880년 5월 원산(元山)과 1883년 1월 인천(仁川)을 순차로 개항하면서 열강과 근대적 교역을 시작했다. 그러자 이들 항구도시에는 당연히 진귀하고 값비싼 물건, 즉 박래품이 흘러들어와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했다.”고 밝혔다. 그 진귀하고 값비싼 물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 신기한 물건들의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을까? 양 교수는 “대다수의 사람은 실물을 보고 이름을 아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신문광고를 통해 알았고, 그렇게 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주로 시계, 양복, 구두, 양산이라든가 향수, 석유, 비누, 바늘 같은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 교수는 박래품들이 그 명칭을 얻게 되는 과정을 소개했다. 일례로 ‘메리야스’라는 단어를 보자. 메리야스는 애초엔 양말을 일컫는 단어였다고 한다. 양 교수는 “‘메리야스’는 스페인어 ‘메디아스(medias)’와 포르투갈어 ‘메이아스(meias)’가 와전된 것인데, 당시는 양말을 가리켰다.”면서, “그런데 양말이 신는 사람 발의 대소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든다는 데서 중국에서는 크건 작건 상관없다는 뜻으로 ‘막대소(莫大小)’라 했다. 그러한 특성 때문에 이 이름은 신축성 좋은 직물로 확대되어 불리게 되었고 오늘의 메리야스가 됐다.”고 했다. 역시 박래품의 하나인 ‘사이다’는 어떻게 ‘사이다’라는 이름을 얻게 됐고, 왜 개항지 인천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됐을까? 양 교수의 글을 통해 개화기 박래품에서 느꼈을 민초들의 설렘을 가늠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