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부터 동북아해역의 교류 허브였던 곳은? |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19-11-06 |
| 조회수 | 317 | ||
| 고대부터 동북아해역의 교류 허브였던 곳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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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협력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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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학교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단장 손동주)과 국제신문 공동기획 <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의 40회 시리즈 기사의 키워드는 ‘제주도’였다. 부경대 HK+사업단 곽수경 교수는 30일 국제신문 19면에 실린 ‘바람 타고 물길 따라 … 탐나는 섬, 제주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제주의 과거 위상과 미래 전망을 짚었다. 곽 교수는 이 글에서 “제주도의 옛 이름인 탐라(耽羅)는 강진의 옛 이름 탐진(耽津)에서 유래했다는 점만 생각해도 제주도와 강진이 서로 왕래가 빈번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면서, “한반도와 제주도는 신라 시대 이전부터 교류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기록상으로는 신라 시대부터 공식적으로 교류했다고 하는데, 당시 제주도는 탐진을 관문으로 삼아 육지와 교류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시선을 조금 더 넓혀 제주도의 동서남북 방향을 보면 각각 일본 규슈, 중국 동쪽 해안, 일본 류큐와 타이완·필리핀 그리고 한반도가 자리하고 있어 동아시아 해양허브로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고려 숙종 10년인 1105년 탐라군으로 개편돼 고려의 지방정부로 편입되기 전까지 탐라국은 우리의 고구려 백제 신라, 중국의 한 수 당 송 그리고 일본 등 주변국과 활발하게 교류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 사례로 일찍이 진시황의 책사였던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려고 제주도에 왔다는 이야기 등을 소개했다. 곽 교수는 “제주 해역에서 일본 나가사키, 중국 상하이, 베트남 등지로 표류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보면 제주도는 주로 강진과 해남, 완도 등 전라남도의 서남해안 지역과 뱃길이 통했고, 바람을 타면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로 오갈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제주도가 고대부터 자연스레 동북아해역의 교류 허브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오늘날 제주의 속살은 어떤 모습일까? 곽 교수는 “2002년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되고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몰려든 중국인의 제주도 땅 사재기가 우려스럽더니 이제는 육지 사람들의 투기에 가까운 땅 매입 역시 공공연하고 제주도와 목포, 또는 중국을 잇는 해저터널 건설 제안,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갈등, 자동차 도로를 넓히기 위해 천연기념물인 500~800살 아름드리 비자나무를 뭉텅이로 잘라버린 사건으로도 부족한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마을이자 람사르습지마을인 선흘리 곶자왈에 17만 평 대형 열대동물원 건립 계획이 제기돼 취소해달라는 국민청원 글이 올라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자연을 거스르고 환경을 파괴하는 정책과 행태에 대해 제주도 사람들이 내는 반대 목소리는 무시되고 있는 형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제주도는 여전히 가진 것이 많은 탐나는 섬.”이라면서, “제주도 80개 섬이 서로 징검다리가 되고, 그것들이 다시 육지와 다른 나라를 이을 수 있다면 고대에 한중일을 연결한 해상교역로로서 했던 교류 중심지 역할을 재현하거나 홍콩이나 마카오보다 훨씬 멋스러우면서도 그 역할을 뛰어넘는 탐나는 섬으로 거듭날 것이라 생각해본다.”고 희망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