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신문이 본 남송우 교수! |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14-01-09 |
| 조회수 | 2240 | ||
| 국제신문이 본 남송우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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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협력과 | ![]() |
2014-01-0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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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문 2면 톱박스 기사. 바로 부경대학교 남송우 교수(61·국어국문학과·왼쪽사진)에 대한 기사다. 현재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남송우 교수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자. 부산문화재단은 부산지역 문화예술 정책과 기획을 심의·집행하는 기관이다. 재단 대표는 ‘부산 문화의 수장자리’인 것이다. 초대 대표도 부경대 전 총장을 역임한 강남주 교수(국어국문학과)였다. 이날 국제신문의 기사는 다음달 6일 대표이사 임기를 마치고 부경대로 복귀하는 남 대표에 대한 ‘지역 언론의 사랑고백(?)’으로 읽힌다. 제목부터 그랬다. ‘부산 문화계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이례적인 제목이다. 남 대표의 임기 3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기사는 “공무를 수행하는 기관장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해 ‘정상이 비정상이 된 사회’에서 남 대표가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보여준 모습은 본보기.”라고 소개했다. 기사는 “청년 시절 목사를 꿈꿨던 남 대표는 성직자 같았던 평소 모습을 부산문화재단 대표로서도 그대로 실천했다.”면서, “대표에게 배정된 관용차와 기사를 돌려보내고 자신의 승용차를 손수 운전했다.”고 썼다. 그래서 “행사에 갈 때면 남 대표가 차를 몰고 직원들이 동승하는 ‘기이한’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남 대표의 ‘직원 사랑’도 각별했다고 한다. 60여명의 직원 생일을 일일이 챙기고 개인 돈으로 케이크를 사서 생일 파티를 열어 주었다고 한다. 기사는 “1년에 케이크 구입비만 수백만 원에 달해 부산문화재단 주위의 제과점 최고 고객은 남 대표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다.”고 했다. 독서를 강조했던 남 대표가 수시로 책을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준 사례도 소개됐다. 기사는 “부경대 교수 시절보다 연봉이 3,000만 원 적은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단 한 번도 연봉 인상을 요청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사비를 털어 직원의 사기를 높였다.”면서, “남 대표가 평소 강조했던 ‘자기희생’이 없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고 밝혔다. 국제신문은 “부산 문화 수장으로도 빛나는 성과를 이뤘다.”면서, “3년 동안 조직을 정비해 서울·경기문화재단과 겨룰 정도로 위상을 높였다. 또 전국 12개 시·도 문화재단 대표자회의 출범에 이바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간사 역할을 맡아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로 지역문화진흥법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제정됐다. ‘나눠 먹기’ 폐해가 많았던 지역문화육성지원사업도 정리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 기사의 서두에 이런 일화가 소개되었다. 지난해 언론인 출신인 정재왈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가 부산문화재단 남송우 대표를 인터뷰하고 이런 말을 남겼다고. ‘부산에서 나는 뜻밖에 성자(聖者) 같은 분을 만났다.’ 이 기사는 “30년 공직 생활을 한 공무원도, 여러 곳의 문화재단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대표를 겪었던 직원도 남 대표를 ‘기관장으로 다시 보기 어려운 우리 시대의 사표(師表)’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평소 ‘대표’보다 ‘교수’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남 대표는 ‘더 맡아 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뿌리치고 학교로 돌아가 미뤘던 공부에 파묻히는 꿈에 젖었다.”고 맺었다. △ 남송우 교수는 누구?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평론),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평론)에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 문학평론가로서 전국 유일의 비평전문문예지인 ‘오늘의 문예비평’과 전국 최장수 독서토론회인 ‘영광독서토론회’의 산파역할을 하는 등 부산문화재단 대표를 맡기 전 부산의 다양한 문화예술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부경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