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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어떤 스피커인가요?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5-03-09
조회수 2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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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어떤 스피커인가요?
대외협력과 2015-03-09 2798



그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은 그보다 어떤 스피커 때문에 시작됐다. 그러나 시작은 그랬지만, 본론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부경대학교 전신 부산수산대학교 기관학과를 1984년에 졸업한 강희영 동문(60세, odinkhan@pknu.ac.kr)의 이야기다.


△ 미국 JBL사의 하츠필드 스피커. ⓒ이성재 사진(홍보팀)

대체 어떤 스피커이기에? 강 동문이 이 ‘대단한 스피커’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때는 지난해 여름이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 후 그가 해운대에 좀 특별한 음악 살롱(?)을 차렸다는 기사가 언론에 나기 시작했고, 그 기사 속에서 스피커 이야기가 비중 있게 등장했다.

거기에 그 웅장한 녀석이 있었다.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3로 1, 선프라자 215호. ’Bell Promenade’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스피커는 양쪽 구석에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미국 JBL사의 하츠필드였다.

세계적인 매거진 <LIFE>가 ‘궁극적인 꿈의 소리’라고 극찬했다고 하니, 어서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 폰으로 듣던 차이코프스키와는 어떻게 다를까? 강 동문이 예프게니 므라빈스키의 지휘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이 연주한 비창을 장착했다.


△ 강희영 동문.
강 동문에 따르면, 지금 CD플레이어에 들어간 비창은 음을 읽어내는 Transport를 거쳐, 디지털을 아날로그로 변환하는 D/A 컨버터를 지나 두 개의 증폭기로 진입하게 되는데, 먼저 작은 신호를 증폭하는 Preamplifier를 지나고 그 다음 메인 엠프로 들어간다. 이 파워 엠프는 증폭된 소리를 하츠필드가 구동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세기로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극복(!)한 비창의 선율이 드디어 녀석의 몸통을 타고 나와 공간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강 동문은 “여기가 가장 명당자리.”라면서 두 스피커에서 이어지는 삼각형 꼭지자리를 권했다. 그는 “거기가 지휘자 자리인데, 눈을 감고 있으면 바로 앞에서 실재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있는 듯한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하츠필드의 첫 인상, 녀석은 1악장 도입부부터 지금까지 듣던 어떤 소리보다 낮고 무겁게 슬픔과 번뇌 속으로 사람을 천천히 끌고 들어갔다고 할까?

높이 122㎝, 폭 120㎝, 깊이 100㎝. 1953년부터 10여 년간 성당과 극장용으로 생산된 대형스피커다.
 
강 동문은 “소리의 해상도가 뚜렷해 호쾌하고 장대한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는 물량이 거의 없어 정확한 시가를 알 수 없지만 오래전에 일본에서 수천만 엔에 거래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부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희귀 스피커라고 한다.

그가 하츠필드를 통해 Simon and Garfunkel을 불러냈다. Scarborough Fair였다. 그는 “이 가사에는 요리에 쓰이는 향료 네 가지가 나온다.”면서,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하고 흥얼거렸다. 그는 부경투데이 취재진을 위해 네 번째에 나오는 thyme(타임)이라는 향료를 써 요리를 해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백옥색 쉐프 가운을 입기 시작했다.

양파 같은 사람이다. 계속 무언가가 나오는. 학교 교정에서 강 동문은 잘 알려진 편이다. 수염, 작은 키(거기에 가끔 복고풍 코트라니. 죄송^^), 중절모. 부경대 원양승선실습 출항식 때마다 부두에 나와 색소폰으로 올드랭사인을 불어대서 이별의 쓸쓸함을 속절없이 더 증폭시켜 주던 사람. 좀 더 그를 아는 이에게는 부경대 기계시스템공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위과학기술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이자 전 연구교수라는 것 정도?

그런 강 동문이 자신이 평생 모은 5,000여장의 클래식과 재즈 명반이 가득한 공간에서 명기 하츠필드가 숨 가쁘게 토해내는 선율을 타고, 지금 타임을 써서 프랑스 요리를 시작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는 1984년 대학 졸업 후 2004년까지 승선생활을 했다. 1급 해기사로 초대형광탄선 기관장을 역임하면서 희망봉(CGH, Cape of Good Hope)을 거쳐 남대서양과 인도양을 수십 번 넘게 넘나들었다고 한다. 2006년에는 기관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공학박사학위(제어기계공학)를 받기도 했다.

1994년부터 2년여 동안은 파리에 유학했다. 거기서 그는 프랑스인 친구들로부터 요리를 배웠다. 그의 요리는 패밀리 스타일인데, 지금 이곳 ’Bell Promenade’에서 그가 구워내는 수제 스테이크는 매우 특별해서 먹어본 사람마다 탄성을 지른다고 한다.

그는 100% 수작업으로 스테이크를 굽는다. 그 비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먼저 손님이 오면 냉장실에서 고기를 꺼내 1시간 정도 노출시킨다.(1시간이나!) 고기 온도가 실온과 같아져야 노릇노릇 잘 구어지고 맛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 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양념을 한다. 이 때 소금과 Scarborough Fair에 나오는 허브 타임이 들어간다. 그는 프로방스산 타임을 사용한다고 한다. 후추는 쓰지 않는다. 그 후 210℃로 달구어진, 요철이 새겨진 전용 프라이팬에 한쪽 면을 2분 동안 굽는다. 그 후 졸인 와인에 적셔 뒤집는다. 익힌 면에는 프랑스 브르고뉴산 버터를 바른다. 풍미를 더하기 위해서다. 2분을 구운 후 포르투갈산 19도짜리 뽀흐또와인(vin de porto)으로 훌랑베(flambé)를 한다.

식탁에 내기 전에 약간의 레스팅 시간을 가지면 비로소 육즙이 가득한, 허브와 버터향이 가미된 맛있는 스테이크가 완성된다. 시식할 때는 노란색 디종산 겨자(moutard de Dijon)를 곁들인다.

그가 요리하는 사이 비틀즈도 다녀가고, 베르디의 ‘헤브류 노예들의 합창’, 푸치니의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 같은 오페라도 이어졌다. 송광사 법회 현장녹음까지. 그는 요리 하는 중간 중간에 음반을 갈고, 그의 맛있는 요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음악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런 음악이 흐르는 공간 속에서 요리가 다 되면 소믈리에이기도 한 그가 권하는 와인으로 그 맛있는 ‘시간’을 먹으면 된다. 오감이 살아나 몸과 마음이 치료되는 시간이다.

이 특별한 공간의 이름 ’Bell Promenade’(벨 프홈나드)는 우리말로 ‘아름다운 산책’이라는 뜻이다. 예술과 담론이 있는 공간을 표방한다.

그는 “요즘 우리의 저녁의 문화가 너무 삭막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저녁에 회식하면 폭식하게 되고 소화시키려고 노래방 가서 고함치고, 만취해 집에 들어가서 쓰러져 잠자는 일련을 과정을 그는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신개념의 문화공간이 있었으면 해서 마련한 곳이다. 클래식과 재즈,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소문난 곳이라고 한다.

그는 중학생 때 처음 LP로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들으면서 클래식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스무 살 때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한 그는 지금은 색소폰 즉흥 연주법을 가르칠 수 있는 드문 실력자로 통한다.

자, 이제 그를 뭐라고 부를 것인가? 음악 살롱의 오너? 쉐프? 교수? 소믈리에? 색소폰 연주자? 그러나 그것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대가 이 ‘벨 프홈나드’에 들리게 된다면, 먼 항해의 과정 속에서 낯선 항구에 도착할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면서 자기만의 모습을 만들어온, 아니 앞으로도 계속 그 모습을 만들어갈 그의 자유로운 ‘영혼의 스피커’가 부러워질 것이다. 거기에 그대의 지금 모습이 겹쳐질 지도 모른다.<부경투데이>


△ ‘벨 프홈나드’ 내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