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문이 뛴다| 백창우 동문 |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15-07-20 |
| 조회수 | 2292 | ||
| 동문이 뛴다| 백창우 동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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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협력과 | ![]() |
2015-07-2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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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깨달음이다」는 책 제목부터 매우 도발적이다. 책 제목 옆에 나란히 붙은 부제 ‘당신을 세상의 진실에 눈뜨게 하는 가장 명쾌하고 확실한 안내자’라는 문장도 그렇다.(책 자체도 위압감이 느껴질 만큼 두껍다. 모두 800페이지.) 스님들도 평생 수행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깨달음 아니던가? 그렇게 어렵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닿게 된다는 깨달음에 대해 백 동문은 ‘사람아, 그게 아니라 바로 이것이 깨달음이야’ 하면서 세상에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백 동문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쓴 깨달음 수행서인 것이다. 부경투데이 취재진이 지난 7월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4동 서흥빌딩 5층 대적광 명상센터에서 백창우 동문을 만났다. 이 명상센터의 운영자가 바로 백 동문이다. 그는 이 센터를 중심으로 세상에 깨달음을 전파하고 있다. 그는 종교인은 아니다. 그는 재가(在家) 가운데 깨달은 이를 칭하는 법사(또는 거사)로 불린다. 재가는 집에 있으면서 스님처럼 깨달음 공부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인터뷰 기사는 크게 세 줄기를 가지고 있다. 온갖 세상사에 휘둘리며 부초처럼 사는 보통사람이라면 낯설지만 궁금한 이야기, 즉 △어떻게 깨달았는가, △깨달음은 어떤 상태인가,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그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백 동문으로부터 행복이 충만한 삶으로 가는 마음공부의 지름길을 안내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1. 어떻게 깨달았는가?
그는 대학 졸업 후 공군 장교로 입대해 22년을 직업군인으로 복무했다. 군대 있을 때 훈련 중 겪었던 부하들의 사고사는 그가 품었던 존재에 대한 의문의 강도를 더욱 강렬하게 한 계기였다. 1998년 명예전역(중령)을 한 그는 깨달음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게 된다. 그 때가 그의 나이 45세. 그는 마음공부 하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수행을 했다. <선문촬요>, <육조단경> 같은 경전을 섭렵하고, 스승과 새벽까지 일문일답을 하면서 치열하게 수행에 몰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행은 역시 어려웠다. 깨달음은 스님이 하는 일이지 자신 같은 생활인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2년 만에 수행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던 2002년 1월 17일 새벽 2시. 그는 무심코 그의 방 책장에 꽂혀있던 책 한 권을 뽑아들었다. 틱낫한 스님이 쓴 「첫사랑은 맨 처음 사랑이 아니다」라는 책이었다. 그 책 속에서 <반야심경>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구절을 풀이한 부분에 그의 눈이 번쩍 뜨였고, 벼락같은 깨달음이 왔다. 백 동문은 “비어있다는 것은 곧 다른 것으로 채워져 있다는 뜻임을 깨달았다. 이 원리를 주변의 모든 것에 대입해 보니까 모두 이해가 됐다.”고 했다. 이것이 그의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그 후 4년 가까이 경전을 읽으며 자신의 깨달음을 다진 그는 2006년부터 주위에 깨달음을 전파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깨달음을 얻고 난 뒤 보니 깨닫기 위해 사람들이 너무 어렵게 수행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쉽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좀 더 많은 이들이 깨달음의 기쁨을 갖게 하고 싶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이 책 「이것이 깨달음이다」는 「명쾌한 깨달음」에 이어 그의 두 번째 책이다. 2. 깨달음은 어떤 상태인가? 깨닫는 순간, 주위의 사물이 어떻게 보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는 존재의 실상이 그대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사물이 이런 모습이었구나. 고요함뿐이구나. 물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모두가 물이었다고 했다. 자신도 물이었다고 했다. 이것이 진정한 실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동안 모양을 분별하고, 물로 된 얼음덩어리들을 지키려고 애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시 물었다. 깨달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의 삶을 초조하게 하는 것, 음울하게 하는 것, 위축되게 하는 것, 불안하게 하는 것, 질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때문에 있지도 않은 모양을 유지하려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래서 초조하고 음울하고 위축되고 불안하고 질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존재의 진실한 실체를 알게 되면, 이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깨달으면 매사 자신만만해지고 여유롭고 든든해진다. 존재의 자유로움을 ‘회복’하게 된다. 마음의 ‘주름’이 확 펴지게 된다고 한다. ‘깨달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조언을 그에게 부탁했다. 그는 연기법을 공부하라고 했다.
그의 설명을 이어가보자. 사과는 어떻게 생겼을까? 사과가 생기려면 비와 바람, 햇빛 같은 온 우주의 참여가 있어야한다. 농부의 삶, 낮과 밤의 기온과 기압 같은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참여해 모인 것이 바로 사과다. 아까 앞에서 설명한 ‘색즉시공 공즉시색’도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사과(‘색’)에는 사과라고 할 만한 무엇이 없다(‘공’). 결국 사과에는 사과 아닌 것으로만 가득한 것이다. 그런데 그 원인과 조건조차도 또 다른 원인과 조건이 모여 된 것이다. 외형은 사과인데 이렇게 끊임없이 본질을 찾아가면 결국 본질은 없는 상태가 된다. 형상은 있는데 비어있는 것이다. 실체가 비어있다는 뜻은 이를 가리킨다. 부모에게서 태어난 나를 보자. 부모도 나의 원인이기는 하지만 공기와 먹거리, 먹거리가 가능한 토대 같은 것이 내가 된 것이다. 그럼 그동안 나라고 생각해온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환영이다. 그 환영을 나라고 잘못 생각해온 것이 바로 무지(無知)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말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는 “깨달음의 느낌을 쉽게 표현하면 탈북한 사람이 서울에 온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북한의 고향사람에게 자기가 본 서울의 모습을 정말 알려주고 싶은데 알려주지 못하는 것이 깨달은 사람의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각 종교도 포장만 다를 뿐 공통의 지향점은 깨달음.”이라면서 “자신은 물론 사회의 이익이 되는 공부가 바로 깨달음 공부이며, 이 공부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캄캄한 밤에 플래시 불빛이 비추는 ‘대상’이 아니라 불빛, 즉 의식이 나온 ‘쪽’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마음 닦는 일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대체로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쫓긴 나머지 존재의 참모습을 모른 채 바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조차 잘 모른 채.) 그동안 몸의 건강을 위해서 좋은 음식 챙겨먹고 운동하면서, 마음의 건강을 위해 어떤 일을 해왔던가? 당당하고 활력 있는 삶을 위해 마음공부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부경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