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탑에 스민 뜻은?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17-04-05 |
조회수 | 1180 |
백경탑에 스민 뜻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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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학교 백경탑이 ‘부네스코위원회 문화유산’으로 선정돼 눈길을 끌고 있다. 부네스코위원회는 부산KBS의 방송프로그램 이름이다. 우리 주위에 숨겨진 소중한 문화유산을 부네스코위원회(부산 유네스코 위원회의 준말)라는 자문단의 토론 선정 방식으로 보여준다. ‘백경탑’은 이 프로그램의 지난달 22일 방송분에서 제13호 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이날 방송에는 부경대 강일권 교수(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가 특별게스트로 출연해 활약을 펼쳤다. 부경대 전신 부산수산대 어업학과 72학번인 강 교수는 젊은 시절 마도로스로 대양을 누빈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백경탑’이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본거지인 북태평양 바다를 처음 개척한 부경대 실습선박인 ‘백경호(398톤)’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백경탑은 어떤 사연이 있기에 방송 프로그램에서 문화유산으로 선정됐을까? 1960년대, 한국전쟁 후 폐허의 이 시절은 사람들이 삼시 세끼를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때였다. 그 때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원양어업이다. 명태와 오징어 등 생선을 잡으면 수출해 외화도 벌 수 있고 사람들을 기름지게 먹일 수 있는 것이다. 생선은 육류와 함께 중요한 단백질 자원이다.
대한조선공사(현재의 한진중공업)가 만든 백경호는 당시 최첨단 장비를 탑재한 실습선이었다. 1964년 12월 진수식 행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백경호’ 명명장이 이인호 선장에게 전달됐고, 육영수 여사가 이 행사에 참석했다. 백경호는 1966년 10월 우리나라 최초로 북태평양 원양어업 시험조업에 성공,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큰 획을 긋게 된다. 그 동안 아무도 가지 못했던, 세계 3대 어장의 하나인 ‘바다의 보고(寶庫) 북태평양’에 부경대생들이 백경호를 타고 짙은 안개와 6미터 높이의 격랑을 헤치고 용감하게 항진, 그 길을 활짝 열었던 것이다.
특히 원양어업의 발전은 선박 만드는 기술의 축적으로 이어져 조선업 부흥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백경호가 이루어낸 역할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 백경호를 이끌고 오대양을 누빈 이들이 바로 부경대생들이었다. 당시 부경대생들의 역할과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는 아래 문장을 읽어보자.
“여러분은 이 나라의 장래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바다를 개척하다 험난한 파도에 목숨을 앗긴 꽃다운 청춘들이 많다.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순직 선원들이 그들이다. 강일권 교수는 방송에서 “해양을 개척한 선배들의 거룩한 뜻을 이어받아 그런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으로 세상을 힘차게 헤쳐 나가라는 의미를 백경탑이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경대 대연캠퍼스 중앙도서관 옆에 있는 백경탑.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백경탑은 바다로 뻗으려는 겨레의 꿈을 안고, 오대양을 누비며 험한 조업환경과 숱한 역경을 헤치며 바다를 일구다 바다에 꽃다운 젊음을 바친 수대남아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수산 업계와 우리 대학의 교수, 동문, 학생들의 뜻을 모아 개교 30주년을 맞아 1971년 5월 15일 세워졌다. 그들은 땅 끝 망망대해 푸른 파도 속에 자취 없이 사라져 갔지만, 우리는 그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해양을 향한 그들의 숭고한 얼과 투철한 의지는 조국의 발전과 함께 살아 있으며, 그들의 도전 정신과 해양 개척 의지가 후배들의 가슴에 영원히 숨 쉬고 있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2011년 5월 15일 어업학과(부경대학교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설립 70주년을 맞아 동문들의 정성을 함께 담아 여기 안온한 태양과 성좌의 아래로 이전 준공하였다.” <부경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