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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객’에 대하여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7-11-02
조회수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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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객’에 대하여
대외협력과 2017-11-02 1227

마침내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전국 언론은 1일자 신문에서 주요 뉴스로 다루었다.

조선통신사…

역사의 창고에 있던 이 ‘200년 동안의 한일 양국 간의 특별한 이벤트’는 어떻게 햇빛 아래로 나오게 되었을까?

이날 국제신문은 3면에 이렇게 썼다.

“이번 등재 소식에 가장 만감이 교차하는 이는 강남주 전 부경대학교 총장(사진)이다. 그는 조선통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산증인’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로부터 등재 결정이라는 낭보가 날아든 이날 아침, <부경투데이子>가 보낸 ‘등재 결정 축하’ 문자에 강 전 총장은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ㅎㅎㅎ 나는 그냥 지나가는 과객이지, 뭐…”

이 자칭 ‘과객’은 조선통신사를 ‘어둠’에서 캐내 세계인들이 인정하고 주목하는 ‘보석’으로 닦는 데 주춧돌을 놓은 장본인이다.

강 전 총장은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한일 학술위원회’라는 긴 이름을 가진 등재 추진기구의 ‘한국 학술위원장’을 맡아 일본 측과 의견을 조율하며 등재를 위해 동분서주 힘을 보탰다.

2012년부터 ‘조선통신사 기록물을 우리 함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자’라는 제안부터, ‘이런 것을 목록에 넣자, 이런 것은 빼자’ 등 기록물 조율과 정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컨트롤 타워로 봉사해온 것이다.

이렇게 강 전 총장을 비롯한 한·일 양국 학자들의 공동 노력으로 임진왜란 이후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조선에서 일본에 12차례 파견한 외교사절의 활동상을 담은 외교·여정·문화 교류에 관한 조선통신사 기록 333점이 세계기록유산 반열에 든 것이다.

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려면 그 유산이 인류 전반에 통용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 즉 ‘OUV’를 지녀야한다.

그런 점에서 2002년 부산시의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 전까지 조선통신사는 오랜 세월 묻혀있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조선통신사를 꺼낸 이는 강 전 총장이었다.

그는 1994년 일본 후쿠오카에 교환교수(당시 부경대 전신 부산수산대 교수)로 1년간 머물 때 조선통신사의 의미를 깊이 인식하게 됐다고 한다.

이 때 그가 만난 사람이 바로 이번 등재 과정에서 일본 측 실무를 진두지휘한 일본 연지협의회 회장인 마츠바라 카즈유키 씨였다.

조선통신사를 매개로 오랜 친분을 유지해온 두 사람은 등재 작업과정에서 긴밀한 소통과 결단력을 발휘, 서로의 민감한 입장을 돌파하며 조선통신사 기록물 세계유산등재라는 값진 성과를 일궈낸 것이다.

후쿠오카에서 만난 조선통신사가 ‘대물’이라는 점을 감지한 ‘전직(前職) 사건기자’(mbc, 중앙일보) 강 전 총장의 취재 본능은 그 후 조선통신사 역사취재(연구)로 이어졌고, 그의 지인들(친구 유흥수 당시 국회의원, 안상영 당시 부산시장 등)은 ‘조선통신사 발굴’이라는 그의 흥미로운 작업을 적극 지원했다.


△ 강남주 전 총장과 마츠바라 카즈유키 씨의 활약상을 소개한 일본 NHK 프로그램 ’World Premium’ 방송화면(11월 2일 오전 7시 30분 방송).

조선통신사는 그런 노력 끝에 2002년 부산시 주관 행렬 재현행사로 화려하게 부활된다. 강 전 총장은 그 과정에서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집행위원장으로, (재)부산문화재단의 초대 대표이사 등으로 맹활약하며 조선통신사 문화 사업을 부산의 대표 문화콘텐츠로 만들었고, 마침내 ‘OUV’를 지닌 세계유산으로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세계기록유산 등재 소식을 타전한 조선일보의 지난 1일자 신문 문화면(23면)에는 이런 제목의 관련 기사가 실렸다.

“조선통신사 기록 세계유산 된 날 소설까지 나오다니 기분이 묘해”

강 전총장의 말인데, 무슨 말인가?

마침 그가 장편소설을 낸 것이다. 바로 그의 장편 「유마도」(산지니刊) 출간 소식을 다룬 인터뷰 기사였다.

이 소설은 조선통신사 사행(使行)길에 올랐던 18세기 동래 화가 변박(卞璞)을 다룬 것이다.(변박의 그림 세 점도 이번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올해 78세의 강 전 총장은 지난 4년 여 현장탐방 등 자료수집, 그리고 각고의 노력으로 쓴 원고 파일이 컴퓨터에서 사라져버리는 우여곡절 끝에 이 소설을 탈고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기사는 “소설은 부산 동래의 무청(武廳)에서 일하다 독학으로 화가가 된 변박이 그의 재능을 알아본 통신 정사 조엄에게 발탁돼 1763년 조선통신사 사행선의 선장이 돼 일본으로 향하는 300일간의 파란만장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강 전 총장은 부경대 동문이다.

부경대 전신 부산수산대 수산경영학과 59학번이다. 문학도였던 그는 국문학을 찾아 부산대 대학원으로 진학한다. 그 후 청·장년 시절 기자로, 불혹 즈음 부산수산대(부경대) 교수로, 부경대 총장으로 활약했다.

그 사이 그는 시인·수필가·문학평론가로서 시집 9권, 평론집 3권, 수필집 2권을 냈다.

그리고 3년 전인 75세, ‘옛날 같으면 고려장 나이’에, 계간문예지 「문예연구」 제61회 신인문학작품 공모전에 당선, 새내기 소설가로 등단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처럼 그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고, 그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의 규칙은 ‘규칙적 생활, 그리고 몸을 바삐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지난 1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강 전 총장은 “임진왜란 이후 두 나라는 불구대천의 관계가 됐으나 통신사를 통해 전쟁을 방지하고 동아시아 세력의 균형추 역할을 했다. 세계정세가 심상찮은 이때 돌아봐야할 이유다.”고 말했다.

같은 날 국제신문 인터뷰 기사에서 자칭 ‘과객’은 이렇게 말했다.

“조선통신사의 가치와 의의를 후속 세대가 잘 이어주길 바랍니다. …”

그는 지금 이 순간도 무언가를 열심히 수첩에 적거나, 유창한 일본어로 누군가와 긴 통화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여 그는 또 어떤 멋진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줄까? <부경투데이>

▷강남주는 누구?

1939년 경남 하동 출생. 부경대 전신 부산수산대 졸업. 부산대 국어국문학 박사, 부산 MBC 기자(1964), 중앙일보 보도국 차장(1968), 부경대 교수(1978), 부경대 총장(2000),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집행위원장(2003), 중국인민대 명예교수(2004).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2008).

봉생문화상(문학부문, 1989), 어민문화상(1990), 부산시문화상(1992), 일맥문화대상(2001), 청조 근정훈장(2004)

▷한국이 보유한 총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은 무엇?

①훈민정음, ②조선왕조실록, ③승정원일기, ④직지심체요절, ⑤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⑥조선왕조 의궤, ⑦동의보감, ⑧일성록, ⑨5·18관련 기록물, ⑩난중일기, ⑪새마을운동기록물, ⑫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⑬한국의 유교책판, ⑭조선통신사 기록물(한·일 공동), ⑮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⑯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부경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