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부경대학교

검색

커뮤니티

 

부경투데이

  • 국립 부경대학교의 다양한 모습과 소식을 접하시면 부경대학교가 한번 더 가까워집니다.
작성자,작성일,첨부파일,조회수로 작성된 표
신명호 교수의 질문은?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8-02-01
조회수 1048
작성자,작성일,첨부파일,조회수로 작성된 표
신명호 교수의 질문은?
대외협력과 2018-02-01 1048



△ 신명호 교수의 글이 실린 국제신문 지면.

‘불교의 관음보살’과 ‘해양문화의 명장면’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부경대학교 사학과와 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 다섯 번째로 31일 국제신문 22면에 실린 신명호 교수의 흥미로운 글도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제목은 ‘모성애의 화신 관음보살, 천년 간 동북아 뱃길 안전 지켜주다’였다.

신명호 교수는 이 기사에서 ‘본연경’을 인용해 관음보살은 전생에 남인도에 살았던 조리라는 이름의 아이였다고 소개했다.

조리는 계모로부터 버림받아 동생 속리와 섬에서 죽게 되었는데도, 그런 공포와 원한에 사무친 상황 속에서도, ‘부모의 은혜를 갚으려면 마음가짐에서 보리심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친모의 유언에 따라 그 무인절도(보타낙가산)에 상주하며 공포와 원한에 사무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죽었다고 한다.

그 서원의 힘으로 조리는 관음보살이 되었고, 속리는 대세지보살이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관음보살은 ‘뭇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대비심(大悲心)을 가진 부처, 모성애의 화신이라고 신 교수는 소개했다.

이어 신 교수는 “관음보살은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모든 중생을 조건 없이 구제하겠다고 서원했다. 그것은 엄마를 부르짖는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감싸 안는 모성애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 관음보살의 서원이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면서, “그 결과 동북아에서는 고대부터 관음신앙이 유행했다. 동북아 관음신앙은 특히 바닷가에서 성행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관음보살의 무대가 보타낙가산이라는 섬일 뿐만 아니라, 일엽편주로 망망대해를 건너야 하는 뱃사람들 처지가 무인절도에 버려진 아이 같기 때문.”이라며, “먼 옛날부터 동북아 해양인들은 배를 탈 때 밀려드는 그 공포와 원한을 관음보살의 대비심으로 극복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신 교수는 “동북아 해양인들의 관음신앙은 주요 항구에 보타낙가산을 만들어내곤 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 양자강 하구 주산열도(舟山列島) 중 하나인 보타도, 한국 양양의 낙산사.”라고 밝혔다.

그는 “양자강 하구 해상무역은 이른바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아시아 전반을 무대로 펼쳐졌다. 동북아 관음신앙 역시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 방면에서 동남아를 거쳐 영파 쪽으로 퍼져 올라왔다.”고 소개했다.

신 교수는 “그 당시 신라 사람은 물론 일본 사람들도 관음보살을 신앙했음은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잘 기록돼 있다. 항해 중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사나워지면 뱃사람 모두 관음보살을 소리높이 불렀다.”고 말했다. 관세음보살! <부경투데이>

▷ 기사 전문 보기 “클릭!”


▷ 다른 <해양문화의 명장면> 시리즈 보러 가기

<4> 김문기 교수 편 - 김문기 교수의 질문은?
<3> 박원용 교수 편 - 박원용 교수가 본 ’해양문화의 명장면’
<2> 이근우 교수 편 - 사학과 이근우 교수의 질문
<1> 프롤로그 - 국제신문이 본 부경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