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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고래는 어떻게 조선 앞바다까지 왔을까?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8-11-26
조회수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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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고래는 어떻게 조선 앞바다까지 왔을까?
대외협력과 2018-11-26 551



△ 김문기 교수의 글이 게재된 국제신문 지면.

11월 21일 국제신문 20면에 실린 부경대학교 사학과‧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 40회는 부경대 김문기 교수(사학과)의 ‘바렌츠의 꿈 : 북극항로와 환동해시대의 개막’이었다.

이 글에는 네덜란드 탐험가 빌렘 바렌츠(1150~1597)가 등장한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바렌츠의 꿈은) 북극항로를 찾는 것이었다.”면서, “스칸디나비아를 돌아 시베리아 북쪽으로 중국에 갈 수 있는 항로. (북극항로는) 유럽의 관점에서 이른바 ‘북동항로’였다.”고 했다.

그러나 세 번째 도전에서 바렌츠는 거대한 얼음 바다에 갇혀버렸다. 카라해 입구였다. 김 교수는 “그와 일행은 결국 다음 여름 얼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들은 배를 분해하여 집을 만들고, 곰과 물개를 잡아먹으며 영하 60도의 혹독한 겨울을 나야 했다.”면서, “위대한 탐험가 빌렘 바렌츠는 끝내 혹한의 동토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흘렀다.

김 교수에 따르면, 조선에 표착하여 억류되었던(1653~1666),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 헨드릭 하멜(1630~1692)이 본국 동인도회사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청어와 고래’가 언급되어 있다고 했다. ‘네덜란드 작살이 꽂힌 고래와 북해에서 나는 것과 같은 청어’가 조선의 동북쪽 넓은 바다에서 발견된다는 것이 하멜의 보고 내용이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하멜이 청어와 고래를 언급했던 것은 단순히 조선의 어업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이것은 결국 유럽의 바다와 아시아의 바다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곧 북극항로를 찾으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멜이 조선에 머물렀던 동안에 네덜란드의 포경어업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고래는 청어와 더불어, 네덜란드 해양산업의 중요한 근간.”이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네덜란드에서 포경어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한 장의 지도 때문이었다. 바로 ‘바렌츠의 지도’였다.”면서, “(당시 얼음 속에 갇혔다가) 러시아인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했던 바렌츠의 부하들은 세 번째 항해의 정보를 담은 지도를 내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바렌츠의 지도’는 북극항로를 찾으려는 탐험가들을 자극하여, 열광적인 관심을 불러왔다. 그런데 정작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엉뚱한 것이었다. 북극주위의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괴물’들, 바로 고래였다.”고 밝혔다.

북극항로를 개척하려다가 뜻밖의 고래 무리를 만나 포경산업의 부흥으로 이어진 것이다.

김 교수는 “북극항로는 끝내 열리지 않았다. 당시는 오늘날보다 훨씬 한랭했던 소빙기(Little Ice Age)였기 때문이었다.”면서, “한랭했던 날씨는 청어 대구 명태와 같은 한류성 어류를 유럽의 북해와 아시아의 바다에 몰아다 주었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 바렌츠가 그토록 갈망했던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다. 바렌츠의 꿈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지구적인 온난화(Warming) 때문.”이라면서, “온난화로 북극항로가 열리면서 주목받는 곳이 있다. 동해이다. 바렌츠를 막았던 얼음이 녹듯이, 이 땅 한반도에도 해빙의 분위기가 오고 있다.”고 밝혔다.<부경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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