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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를 아시나요?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8-01-23
조회수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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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를 아시나요?
대외협력과 2018-01-23 1450

‘아무데도 닿지 못하여 낯선 부두만 기웃대다…’
- 안데스에서 온 시인 류홍수 명예교수의 시 한 편


류홍수 시인(사진)이 부경투데이 편집자 메일로 시 한 편을 보내왔다.

류 시인은 부경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를 지내다 2015년 8월 퇴임했다.
 
메일의 제목은 ‘안데스의 열세 번째 글’이었는데, 그 파일을 열어보니 ‘Titicaca의 추억’이라는 긴 시 한편이 붙어있었다.

그는 지금 아마 안데스 어딘가 있는 거 같았다. 네이버에 찾아보니 Titicaca는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에 있는 세계 최고지(最高地)의 호수였다.

낮에 그 호수를 둘러보고 저녁 무렵부터, 아니 새벽에 일어나 낯선 침실에 엎드려 쓴 시였을 것이다.
 
그는 지금도 유목민처럼 여행 중인 것이다. 말 그대로 그는 지구별 여행자다.

퇴임 즈음 부경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제주 올레 26코스도 완주하고 오름도 80여개를 올랐다고 했었다. 미국 동서 종주 7회, 그랜드캐니언을 비롯한 미 서부 국립공원을 20회 이상 찾았다고도.
 
그는 왜 그렇게 여행하는 걸까?

그는 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직접 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도, 꿈을 꿀 수도, 계획할 수도 없다. 인터넷 서핑에서 벗어나 배낭을 메고 세상 구석구석을 직접 밟으면서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바람과 햇살, 풀냄새가 내면을 깨우고 삶을 변화시켜준다.”

그는 「꽃 너머 그대」, 「산타페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두 권의 시집을 냈다. 문학평론가 남송우 교수(국어국문학과)는 그를 ‘오랫동안 묻혀있던 보화’라고 칭했다.

그는 삶의 의미를 자신에게, 또는 자연에게, 신에게 묻고 또 물으며 하염없이 가고 있는 거 같다. 그는 시  ‘Titicaca의 추억’에서 “어차피 떠돌이별에 실려 멀미 참고 사는 것은 매 한가지”라면서, “물의 눈으로 하늘을 보는 섬으로 열린 문이 휑한 언덕으로 나는 또 가고 갈 뿐이다.”라고 말한다.

어서 ‘Titicaca의 추억’을 읽어보자.

Titicaca의 추억

- 류홍수

1.
맡기고 내어준 세월이 기다리는 교회 뒷마당 같다
들숨 쉬는 일이 힘겨운 날에 그리도 그리웠던 호수는

찬 비 한줄기 빈 고깃배 위에 남은
하루치 아쉬움마저 식히며 지나갔다
덜 자란 토토라1) 덤불에서 쫓겨난 새들의 흔적은
오렌지 빛 아픈 하늘에서도 찾을 수 없고

하늘이 가까워질수록 가빠지는 호흡처럼
시간으로 희석된 사랑의 기억이 흐릿하다

잠든 회색퓨마(Titicaca)2) 머리맡에 자꾸 뿌려지는 제라늄 부케
시들어가는 그리움의 색깔이 짙어가듯
잠 못드는 호수의 눈빛은 농익은 머룻빛
          
2.
왜 그리 떠돌며 사느냐고 물을 뻔 했다
감자꽃 피는 섬3)을 일구는 일이나
강냉이 술에 곱게 취해 푸노(Puno)4) 뒷골목을 헤매는 것이나
이 세상 반대편에서 찾아와 이렇게 허덕대는 우리네나
어차피 떠돌이별에 실려 멀미 참고 사는 것은 매 한가지인데

밤새며 떠내려 보낸 삶에 관한 온갖 하잘 것 없는 명제들은
아침 뱃길 따라 부표 한 개로도 떠오르지 않지만
몸을 열어 지천의 수로를 내어준 호수를 일렁이며
물의 눈으로 하늘을 보는 섬으로
열린 문이 휑한 언덕으로
나는 또 가고 갈 뿐이다

실매듭 몇 개들고 뙤약볕 아래 기다리던 아이의 파리한 손 
춤추는 잉카 아낙네의 깊고 그윽한 눈동자
츄노5)를 내밀며 건네준 추운 계절의 양식
그리고 삭아서 잠겨가는 터전6)을 수선하는 쓸쓸한 손놀림

아무데도 닿지 못하여 낯선 부두만 기웃대다
원치 않던 이별을 치룬 것처럼 
내가 하는 사랑은 모두
어둠이 고이면 날아가는 새들의 순서나 헤아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갈라낸 뱃길을 되삼키는
딱하디 딱한 티티카카 호수 같은 숙명이다 

1) Titicaca 호수에 자라는 갈대과 수초
2) Titicaca 호수를 공중에서 보면 회색 퓨마 모습으로 보인다
3) Taquile Island, 경작지가 있는 Titicaca 호수 안의 섬
4) 티티카카 호반의 도시로 페루 남부 안데스 산맥 중앙에 있는 인디오가
   많이 사는 해발 약 3,850M의 도시.
5) Inca 사람들이 겨울 식량으로 쓰는 천연냉동건조 감자
6) 토토라를 엮어 만든 떠다니는 섬 Uros Is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