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의 동문> 첫 국장급 여성연구관 박미선 동문 | |||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4-02-11 |
| 조회수 | 4835 | ||
| <화제의 동문> 첫 국장급 여성연구관 박미선 동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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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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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기획실장 박미선 동문(양식학과 78학번)
- 어류 질병 예방백신, ’보약물고기’ 등 개발한 베테랑 연구관
국립수산과학원이 최근 조직개편을 하면서 연구기획실장(3급)에 박미선(양식학과 78학번·parkms@nfrdi.re.kr) 연구관을 임명했다.
기존의 연구관리과를 연구기획, 조정 및 평가기능을 강화한 연구기획실로 명칭을 변경하고, 담당자도 행정관에서 연구관 출신으로 뽑은 것인데, 첫 단추를 부경대 동문인 박 연구관이 끼우게 된 것이다.
해양수산부 산하 연구기관인 수산과학원은 물론 해양부에서도 여성이 국장급에 임명되기는 박 연구관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박미선 실장을 부경투데이 취재팀이 지난 2월 10일 기장에 위치한 국립수산과학원을 찾아가 만났다.
박 동문은 1982년 연구사(6급)로 수산과학원에 첫 발을 디딘 후 1986∼1987년 프랑스 해양연구원에 파견 근무를 했고 1990년에 연구관으로 승진한 뒤 1999년에는 여성연구관으로 처음 시험장장(여수시험장)이 됐다.
2000년부터는 병리연구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각종 어류질병 예방백신을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편집자주>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기획실장 박미선 동문(양식학과 78학번). 해양수산부 산하 연구기관인 수산과학원은 물론 해양부에서도 여성이 국장급에 임명되기는 박 동문이 처음이다.<사진촬영/임선명 학생기자(미생물학과)>
◇연구기획실장이 된 소감은?
첫 국장급 여성 인사라 그런지 주위에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벌써부터 여러 언론에서 취재도 해갔는데 항상 이 질문이 가장 먼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국장급이라는 직위나 첫 여성 국장급 인사라는 것에는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이번에 기존의 연구관리과가 연구기획실로 바뀌면서 담당자도 4급 행정서기관에서 3급의 연구관으로 바뀌게 된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좀 더 나은 활동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런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부담이 크다.
◇대학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
당시 부산수산대(부경대의 전신) 동기생이 280명이었는데 여학생은 나를 포함해서 단 4명뿐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니어서 많은 남학생들 틈바구니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솔직히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해 많이 힘들었었다.
별로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오죽했으면 재수를 할까 하는 고민도 했다. 하지만 3학년이 되고 양어장과 실험실에서 생활을 하면서부터 조금씩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훌륭한 교수님들 밑에서 본격적으로 전공수업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학과공부에도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은 교수님들이 무척 엄하셔서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웃음)
◇특히 기억에 남는 교수님이 있다면?
모두 워낙 훌륭하신 분들이라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언제나 연구실이나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특히 김인배 교수님의 물고기에 대한 사랑이 기억에 남는다. 한번은 양식장에서 죽은 물고기를 보고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왜 저놈만 멍청하게 죽었나’ 하고 그냥 지나가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그 얘기를 들으시고는 ’누가 너희들을 보고 멍청하다고 하면 기분이 좋겠느냐’며 나무라신 적이 있다. 그때는 사실 좀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특히 내가 이곳에서 연구를 계속하다 보니 생명의 소중함과 더불어 물고기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이는 이곳에서의 연구도 별고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물고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계셨던 교수님이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학교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당시는 지금 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등교를 해야할 정도였으니까.(웃음) 체육수업이 든 날은 그냥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형편이 어려운 학우들도 많았다. 진짜 막걸리로 끼니를 때우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보사 생활도 한 6개월 정도 했는데 힘들어서 그만 뒀다.
대학 생활동안 마음 놓고 신나게 놀아보지도 못했던 것 같고, 그렇다고 죽어라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많이 아쉽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양어장과 실험실에서의 생활이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그때 친구들과 함께 실습 수업을 받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억에 남는 친구들은?
아까도 말했지만 여학생이 4명뿐이어서 항상 같이 어울렸다. 그중 한 명은 지금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유해 생물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직장 동료다. 요즘은 사는 일이 바빠서 자주 연락하지 못하지만 나머지 두 명도 가끔씩은 안부를 묻는다. 또, 사실은 학교 다닐 때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가 지금의 남편이다. 결국 가장 기억에 남고, 지금도 항상 연락하는 친구는 지금의 남편이다.(웃음)
그때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라서 남학생, 여학생이 같이 손만 잡고 가도 따가운 눈길을 받던 때였다. 드러내놓고 캠퍼스 커플이라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교 밖에서 몰래 데이트를 했다.
◇다시 학창시절로 되돌아간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나?
꼭 전공 공부가 아니더라도, 내가 진심으로 하고싶은 공부를 찾아서 좀더 계획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스스로도 즐거워지는 것이 아닌가?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영어를 비롯해서 외국어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
◇학창시절에 꿈이 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