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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학교 톺아보기 | 향파문학비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3-04-04
조회수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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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학교 톺아보기 | 향파문학비
대외협력과 2013-04-04 1151


이 글은 한국예총 부산광역시연합회 기관지인 『예술부산』 4월호의 권두칼럼 코너에 실린 부경대 김영섭 총장의 글이다.<편집자 주> 


△ 김영섭 총장.
#. 이 지면에 원고 청탁을 받고, 소설가이자 아동문학가인 향파 이주홍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향파는 1925년 「신소년」에 첫 동화 ‘뱀새끼의 무도(舞蹈)’를 발표하고, 1929년 조선일보에 첫 단편소설 ‘가난과 결혼’으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대표 단편소설인 ‘유기품(遺棄品)’은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소설로 일상적인 사건 묘사와 자연스런 표현, 능숙한 리얼리티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그는 만능 엔터테이너였습니다. 시와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 희곡 동시 동화 번역 등 문학 전반에 걸쳐 왕성한 활동으로 한국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대한민국 문화훈장, 대한민국 예술원상, 부산시문화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국 문학사의 큰 봉우리였던 향파는 1949년부터 부경대학교 전신인 부산수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1987년 돌아가실 때까지 후학을 양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향파는 40년 가까이 대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쳤던 교수였습니다. 



△ 향파 이주홍.
#. 지금도 부경대학교 교정 곳곳에는 그의 자취가 남아있어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꼿꼿한 문인의 기품이 넘치는 이주홍 교수의 서화(書畵)도 누구나 한 점쯤 지니고 싶어 했을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박물관의 현판 글씨와 학생회관인 백경회관 현판 글씨가 바로 그가 직접 쓴 글씨입니다. 박물관 현판은 누가 가져가는 바람에 되찾는 소동이 빚어졌을 정도로 멋진 필체를 자랑합니다. 

부경대학교 교정에는 또 향파의 소중한 유적이 있습니다. 바로 향파 이주홍 문학비입니다. 이주홍문학재단이 2006년 6월 2일 향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것입니다. 그 때 향파 탄생 100주년 기념문학제가 열렸던 것입니다. 향파는 1906년생입니다. 부산에서 탄생 100주년을 맞는 문인을 기리는 문학제는 향파가 그 때 처음이었습니다. 

향파문학비는 미술인 정진윤 선생님이 만든 멋진 조각 작품입니다. 향파가 생전에 200권에 달하는 많은 저서를 낸 점을 감안하여 책의 형태로 제작됐습니다. 어른 키를 넘는 큼직한 책의 형상을 한 이 문학비는 이주홍 교수가 생전에 학생들에게 문학을 강의하던 건물 앞 정원에 있습니다. 이 건물의 명칭은 3호관이었습니다.
 

△ 향파관과 누리관 사이에 위치한 향파문학비.

#. 그런데 직접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직사각형으로 된 커다란 잔디화단 안에 있는 향파문학비는 사각이라는 정형의 틀을 깨며 비스듬하게 서 있습니다! 그래서 문학비가 있는 공간은 유달리 생동감이 넘칩니다. 주변의 건물과 식물과 돌 같은 가만히 있는 사물들이 이 비스듬한 문학비와 어울리면서 모두 꿈틀대는 듯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만약 이 문학비가 사각 화단의 한 변과 나란하게 평행으로 서 있었더라면 얼마나 적적하고 심심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틀을 깨는 것, 다르게 보는 것, 변화를 시도하는 것, 이런 것이 작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비에 새겨진 글은 향파의 소설집 ‘해변’의 후기에서 뽑은 것입니다. 그 글을 한글학자 류영남 선생님이 붓으로 쓴 것인데 향파의 작가정신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작품은 곧 발언이다. 인간으로서 원초적인 몸부림이거나, 자기가 처해있는 환경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이거나, 필경엔 발언 이상의 것일 수가 없다.”
200권이라는 방대한 저서를 낸 대문학가 향파가 문학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또는 그의 존재의 이유가 이 문장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이러니 그의 문학비가 비스듬할 수밖에 없습니다.

#. ‘작품은 곧 발언이다’는 향파의 사유를 따라가 보면 ‘작품’ 뿐만 아니라 사람이 각 분야에서 내는 모든 성과물들이 나름대로의 ‘발언’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멋진 디자인, 창의적 공학 작품도 발언이고 새로운 연구논문도 발언일 것입니다. 그 귀중한 발언이 하나씩 모여 오늘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왔겠지요? 

당시 부산수산대학교에서 문학을 강의하면서 그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문학적 감수성과 심미안을 불어넣어주었을 것입니다. 예술적 심미성을 발견하는 삶을 일깨워주었던 것입니다. 심미성을 깨우치는 일이야말로 다르게 사유하는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도 그는 예의 그 ‘발언’을 강조하였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끊임없이 정형의 틀을 벗어나라고 채찍질하였을 것입니다.

#. 이주홍 교수가 이처럼 생전에 문학을 강의한 교정에 세워진 문학비는 그의 집이 있었던 동래 온천장에 있는 향파문학관과 더불어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부경대학교는 향파의 문학정신을 잇기 위해 문학비를 앞에 둔 이 3호관 건물을 향파관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또 그 속에 있는 인문사회과학도서관과 정독실을 향파도서관, 향파정독실로 부르고 있습니다.
언제 한번 독자 여러분이 우리 대학 교정에 오시는 길이 있으면 이주홍 교수의 사색과 사유의 공간을 비스듬하게 가르고 서 있는 그의 문학비를 들러주십시오. 

향파는 강의를 하다가 창밖을 바라보면서 잠깐씩 생각에 잠기곤 했다고 합니다. 문학비가 세워진 지점은 향파가 강의실 창밖을 응시할 때 시선이 멈춘 곳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문학비 앞에 서서 강의실 쪽을 바라보게 된다면, 바로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빛나는 향파의 시선과 마주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 노작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당신의 ‘발언’은 잘 되고 있습니까?"<부경투데이> 


△ 『예술부산』에 실린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