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맨' 최도석의 일 이야기 | |||
| 작성자 | 대외협력과 | 작성일 | 2014-06-03 |
| 조회수 | 3216 | ||
| '삼성맨' 최도석의 일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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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끝나고 한 학생이 물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가정과 일의 양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부회장님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다섯 살 난 아이에게 자전거를 사주었다. 아파트 안에서만 타라고, 거리로 나가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어느 날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거리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인 그는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아이를 둘러업고 집으로 오면서 야단을 쳤다. 왜 말을 듣지 않고 거리로 나갔냐고. 그러자 아이가 답했다. “너, 우리 엄마한테 일러줄 거야. 우리 엄마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그는 “그때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고 했다. 그 때 좌중이 조금 술렁거렸다. 전(前) 삼성카드 최도석 대표이사 부회장(65세)의 말이다. 그는 “가정과 회사 중 하나를 포기해야했다.”고 말했다. 일이 전부인 그를 부경대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3일 오후 3시 중앙도서관 영상세미나실. 경영대학(학장 하명신) 주관 ‘제9회 CEO와의 대화’에 초청된 강사가 그였다. 그는 부경대 전신 부산수산대가 부친의 모교라는 인연 때문에 고교 동창인 경영대학 윤광운 교수의 특강 요청에 흔쾌히 서울서 이까지 달려왔다고 했다. 1975년 삼성에 입사한 그는 36년 동안 삼성에서 근무했다. 대부분을 삼성전자에서 일했다고 한다. 입사 15년 만에 임원이 됐고,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사장, 부회장을 무려 11년 동안이나 ‘해 처먹었다’.”고 한다. 그 동력이 무엇이었을까? 이것이 이날의 이야기 소재였다.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그의 좌우명은 두 가지다. 1. 기본에 충실하라. 2. 수신제가 후에 치국평천하. 얼핏 밋밋해 보이는 이 두 가지 좌우명 속에는 ‘슬프도록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 기본에 충실 하라. 그에 따르면, 이것은 개인의 경우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통해서 전문지식을 함양하는 것이다.
그는 설과 추석만 빼고 내내 출근해 일했다고 한다. 얼마나 일이 많았으면 결혼에 관심도 없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 결혼은 어떻게 하게 됐을까? 그는 “5일 놀기 위해 결혼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 좌중이 다시 출렁했다. 그는 “이런 자리에서 개인사를 좀처럼 털어놓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토요일 오후 4시에 결혼한 과정을 짤막하게 들려주었다. 토요일 오후에 결혼한 이유도 가장 많이 놀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3시40분에 나가 결혼식장까지 뛰어갔다고 한다. 결혼식장도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코리아나호텔이었다. 결혼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신랑입장!’ 구호가 들렸을 정도. 그는 “당시는 우리가 보릿고개를 넘을 때였다. 일이 우리에겐 생존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일을 했더니 회사 안팎에서 ‘어떤 일을 맡겨도 이 친구는 해 내더라.’는 브랜드가 자신에게 붙더라고 말했다. 그는 조직 내에서의 정보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때의 정보란, 회사 내의 회계정보, 판매정보, 재고정보를 말하는데 이것이 조직 내에서 공유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삼성전자가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정보 공유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회계법인도 금방 사내 정보를 알 수 있는 경영시스템을 손수 만들기도 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천하의 소니를 꺾은 저력도 정보를 공유하는 부문이 소니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밥 먹고 술 마시고 이야기하고 문자 보내기로 소통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면서, “경영에 필요한 정보의 공유야말로 진정한 소통이다.”고 말했다. 아까 이 글의 서두에서 제기된 학생의 질문에 그는 즉답하지 않고 “역시 취업에 관심이 많군요.”라며 화제를 돌리며 입사 팁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강의가 끝나자 그에게 질문이 이어졌다. 청중석에서 누가 물었다. “그렇게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셨는데, 회장님의 두 가지 신조 중 ‘수신제가(修身齊家)’에서 ‘제가(齊家)’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그러니까 ‘가정은 어떻게 근사하셨느냐’는 질문이었다. 아까 ‘자전거’와 ‘결혼’에 대한 그의 독특한 일화 때문에 그에게 어떤 답변이 나올까, 좌중의 귀가 그에게 쏠렸다. “아, 여기서 ‘제가’는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회사의 경영인프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청중석이 잠잠해졌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좌우명인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국내 시장을 점하고 세계시장을 평정한다는 것!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인 그는 경영 학도시절부터 가슴 깊이 간직한 문장이 있다며 소개했다. ‘가치는 가격보다 높아야하고 가격은 원가보다 높아야한다.’ 그는 “그런데 가치는 고객이 결정한다. 만드는 사람이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만큼 고객이 만족하는 가치 있는 최고의 제품을 위해 전력투구해왔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이루었다. 일과 가정, 둘 다 양립하면서 어떻게 그 ‘일’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부경대생들에게 무거운 화두를 던진 강의였다.<부경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