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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일상, 무사하면 좋은가?
작성자 대외협력과 작성일 2014-09-25
조회수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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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일상, 무사하면 좋은가?
대외협력과 2014-09-25 1425



그대 일상은 무사한가? 과연 이대로 가도 좋단 말인가? 지금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그대의 삶에도 암흑기(중세)를 지나 새로운 시대(르네상스)를 열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대에게 지금보다 더 새로운 시간, 더 창조의 시간, 더 빛나는 시간, 더 아름다운 시간을 열어야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 김상근 교수. ⓒ서형석 사진(대외홍보대사 ’블루’)
이것이 25일 오전 7시 부경대학교 미래관 4층 컨벤션 홀에서 부울경 지역 CEO를 대상으로 열린 <부경CEO 행복 인문학 콘서트>의 주제였다. 강사는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였다.
 
그러니까 르네상스가 주제였다. 김 교수는 르네상스만으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고 한다. 르네상스를 들여다보면, 거기에 삶의 기술, 삶의 비기(秘技)들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르네상스는 중세 1,000년을 마감시킨 매우 중요한 시기.”라면서, “1,000년의 공고한 내적 논리를 가졌던 중세를 마감시킨 동력과 수단, 힘은 무엇이었나? 그것이 창조의 시대, 혁신의 시대 꿈꾸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휴렛팩커드 첫 여성 CEO였던 칼리 피오리나는 스텐퍼드대학에서 중세사와 철학을 전공했다.”면서, “중세에서 르네상스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연구한 지식으로 디지털시대의 도래를 예측한 것이 적중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1348년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빠져버렸고, 사람들은 종교에 귀의할 수밖에 없었다. 중세는 종교의 시대였다.”고 말했다.

그는 “고대 로마시대 세계지도를 보면 아시아를 인식할 정도로 시야가 넓었다. 그런데 중세시대의 세계지도는 예루살렘이 중심이 되어 있고, 지중해만 의미 있는 바다로 그려져 있다. 매우 제한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예술도 종교적인 형식주의가 주도했다.”고 말했다.

이 암흑의 시대 중세는 어떻게 마감하게 되었을까?

1. 단테, 페트라르카, 지오토, 마사초에게서 배운다: 사물과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고, 돌체(Dolce)의 삶을 추구하라!

김 교수는 이날 “중세는 인구 3만∼5만 명의 작은 도시국가에서 중세가 마감된다. 바로 그곳이 피렌체.”라고 말했다. 지금의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고향이다.

그는 “천년에 한번 태어날까 말까한 천재들, 단테, 미켈란젤로, 다빈치, 마키아벨 리가 피렌체 한 동네 친구들이었다.”면서, “단테는 단연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꼽힌다.”고 말했다.
 
아시다시피 단테((1265∼1321))는 신곡의 저자다. 김 교수는 “단테는 아홉 살 때 만난 첫사랑 베아트리체가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베아트리체와 헤어지고 나서 쓰기 시작한 것이 신곡이다. 신곡은 단어 숫자와 운율까지 맞춘 달콤한 노래다. 소리 내어 읽으면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 거 같다. 이것이 바로 ‘Dolce stil novo’, 상큼하고 새로운 방식이다.”고 말했다.

그는 “단테의 신곡은 중세를 장례지내는 장송곡이었던 셈이다.”면서, “이 돌체한 것, 달콤하고 가슴 뛰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인가에 매혹된 자가 새로운 시대를 창조한다.”면서 청중에게 물었다. “아침에 회사로 올 때 돌체하십니까? 과연 가슴이 뛰십니까? 아니면 오늘도 무사히 입니까?”

단테에 이어 페트라르카(1304∼1374)가 등장했다. 김 교수는 “단테가 중세를 끝낸 인물이라면 페트라르카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상의 기초를 확립하면서 르네상스를 시작시킨 인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페트라르카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산 몽방뚜 정상(1,912 m)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제 10 장을 읽었다.”면서, “그의 하산과 함께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운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고백록>을 읽어보자.

“인간은 산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굽이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휘몰아치는 큰 대양을 바라보면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들의
운행을 바라보면서 넋을 잃지만,
정작 인간 내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이런 각성이 르네상스의 힘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청중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내면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다음으로 르네상스 미술의 아버지 지오토(1267∼1337년)가 소개됐다. 김 교수는 “서양 미술에서 최초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한 인물.”이라면서, “중세시대에는 천사를 아름답게 거룩하게만 묘사했지만, 지오토는 슬픔을 얼굴에 표현했고, 무조건 따르는 인간이 아닌 의문을 가진 인간을 그렸다.”고 말했다.

마사초(1401∼1428)도 등장했다. 중세시대에는 아담과 이브는 예수와 성모의 구약적 모델로 그림에서 성스럽게 표현됐다. 그러나 마사초는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를 아픔과 슬픔, 수치와 고통이 가득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렸다.

김 교수는 “이들은 그동안 간과되어온 인간의 본질을 과감하게 표현해냈다.”면서, “사물과 인간의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능력은 어떻게 배양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사물의 본질을 규명한다는 것은 사실 다른 사람이 이미 규명해 놓은 기존의 본질에 도전하는 행위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각 업계, 분야에서 규정되어 있는 것들에 대하여 발칙한 질문을 제기하라.”고 주문했다.
 
왜 나는 이 법칙을 따라야 하나?
왜 나는 남과 다를 수 없는가?
왜 나는 내 방식을 사용 못하나?

김 교수는 “CEO들은 이 같은 질문을 하는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품어서 도전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돌체한 창조공간으로 구글의 복도와 사무실이 소개됐다. 자전거를 타고 공중의 흔들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는 사무실!

세계 최고 수준의 아웃도어 용품 생산업체인 파타고니아의 사례도 나왔다. 이 회사의 회장은 ‘Let my people go surfing’이라는 책을 냈다.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회사가 있는데, 파도가 높아지면 회장이 직원들과 업무시간이라도 나가서 함께 서핑을 즐긴다고 한다. 돌체!

김 교수는 “아름다움에 매혹된 삶, 돌체(Dolce)한 삶, 사물과 인간의 본질을 깊이 성찰하는 삶에서 창조적 영감이 나온다.”고 말했다.

2. 시스티나 예배당의 미켈란젤로에게서 배운다; 내재적 동기로 몰입하라!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이야기다. 이 그림은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처음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타의에 의해.

시스티나 예배당은 교황 식스투스 4세 지시로 솔로몬 성전의 형식으로 건축된 곳으로 교황의 예배당인 동시에 콘클레베의 거룩한 장소다.

애초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12사도상’을 주문했으나 미켈란젤로는 ‘심판’을 주제로 선택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림,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려했던 것이다. 교황청의 타락에 대한 강력한 비판정신을 작품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1508부터 4년에 걸쳐 천정에 매달려 천장화를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의 미켈란젤로의 편지를 보자.

“턱수염이 하늘을 향하니 목덜미에 달라붙는 뒤통수가 느껴지네.
내 가슴은 하르피이아(그리스 신화의 괴물)처럼 축 늘어졌고
얼굴 위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붓에 뚝뚝 떨어진 물감 방울들이
내 얼굴을 영롱한 마룻바닥으로 만들어 버렸다네.
내 허리는 올챙이배를 가로지르고
내 엉덩이는 평형추 같은 말 엉덩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걷고 있는
이 발걸음의 무의미함이여!
팽팽하게 쫙 펴진 앞쪽의 살들만큼
뒤로는 접혀져 매듭을 이룬,
나는 시리아의 활처럼 휘었다네.
조반니, 이 친구야
어서 와서 죽은 내 그림과 명예를 구해주게.
난 지금 좋지 않은 곳에 있어.
그리고 난 화가도 아니지 않은가?”
 

김 교수는 “이 그림은 내재적 동기에 의한 몰입이 이루어낸 걸작.”이고 말했다.

그는 “몰입은 자신의 삶에 완전히 동화되어 몰아지경에 이르는 주관적 경험.”이라면서, “몰입은 외부적 보상으로는 안 된다. 내재적 동기가 중요하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한다는 것, 이 일이 세상을 바꾼다는 가슴 벅찬 기대감과 소명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미켈란젤로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거부했다. 미켈란젤로는 파라곤(Paragon)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파라곤은 ‘완벽한 모델’이라는 말이다.

미켈란젤로가 28세 완성한 조각의 파라곤은 <다비드>다. 높이 5.5미터, 50톤짜리 대리석에 ‘꺼낸’ 파라곤이다. 앞서 소개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미켈란젤로가 38세에 완성한 회화의 파라곤이다. 건축의 파라곤 로마의 성베드로성당이다. 90세 노인 미켈란젤로가 죽어가면서 지은 것이다!

김 교수는 “나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보면서 엉엉 울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왜 더 나은 삶을 위해, 인류를 위해 파라곤을 추구하지 않는가?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얼렁뚱땅 보내고 있는가? 그는 “그 그림은 그 때 초라한 나의 모습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었다.”고 말했다. 좌중에서 공감의 박수가 쏟아졌다.<부경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