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부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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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하우스

Campus Landmarks


워커하우스 1
6·25전쟁의 기억을 품은 유산

워커하우스

대연캠퍼스 중앙에 자리한 워커하우스는 근대 건축의 품격과 6·25전쟁 시기의 기억을 함께 간직한 국립부경대학교의 대표 경관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캠퍼스가 자리 잡기까지의 수많은 격동의 시간을 지나 학생·연구자들의 공간으로 재탄생하여, 오늘날에는 대학의 정체성과 역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장소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 위치: 캠퍼스 정문 도보 10분
  • 추천 시간: 10:00 - 16:00 (채광이 좋은 시간)

워커하우스 내력

"지키느냐 아니면 죽느냐(Stand or die),
연합군 회생의 골든타임 18일을 버텨낸 낙동강 전선의 최후 보루"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9월, 인민군의 대공세로 낙동강 방어선이 붕괴 직전까지 몰리며 대한민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던 위급한 시기였습니다. 이때 미 8군과 유엔군을 진두지휘하던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9월 6일 미 8군 사령부를 대구에서 당시 부산수산대학(현 국립부경대학교) 교내로 전격 이전했습니다.

이곳 '워커하우스(WALKER HOUSE)'는 낙동강 전선의 총 지휘본부로서 16개국 연합군의 작전을 총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미국의 전쟁사가 애플만의 기록에 따르면, 사령부를 부산으로 옮긴 가장 큰 이유는 대체 불가능한 육군 신호 통신장비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워커하우스가 전쟁 지휘본부의 역할을 담당한 기간은 9월 6일부터 사령부가 대구로 다시 복귀한 9월 24일까지 단 18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연합군 수뇌부가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이 18일을 굳건히 버텨주었기에,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전기를 마련하고 전쟁의 승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워커하우스 18일'은 한국전쟁기 연합군 회생의 골든타임이었던 셈입니다.

낙동강 전선을 누비며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물러설 곳도 없고 물러서서도 안 된다."라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던 워커 장군의 투혼이 서린 이곳은, 연합군 반격의 전기를 마련한 역사적 랜드마크입니다.

건물 자체는 미 8군 사령부가 옮겨오기 직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석과 콘크리트를 혼합한 가설 형태의 돌집으로 벽 두께만 1m에 달합니다. 1957년 대학에 반환된 후 식당과 동아리방 등으로 사용되다 1990년 화재를 겪었으나, 1995년 9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지금도 굳건히 남아있는 돌벽은 당시의 긴박했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부산일보 기획시리즈: “피란수도에서 평화수도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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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6-02-26